주요메뉴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캠퍼스 도서관

고객센터 평일 AM9:00~ PM7:00
교육 상담02-6276-2626
검정 · 보수교육02-6276-2624
지도교사 모집02-6276-2512

독서지도사 교육후기

Home캠퍼스도서관독서지도사 교육후기

* 서비스 이용 후기의 저작권은 평생교육원에 있습니다.  
교육후기 표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내용보기
34 1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리며 - 장려상 91기 서울 오전 서현경 3,412 내용 보기 내용 닫기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던 적이 있다. 스무 살, 그 때 내가 생각했던 10년 후의 모습은 원하는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결혼을 하고 한 명 정도의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된 모습이었다. 10년이 지나고 보니 나는 그 때 그렸던 내가 되어 있었다. 10년 전 예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그런 나의 모습... 그렇다면 나는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원하는 직장, 결혼, 아이까지 20대의 가장 큰 숙제 같은 일을 해내고 있었지만 나에게 남은 건 성취감과 만족감이 아닌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은 자괴감과 우울함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의 우울함은 스무 살 때 그렸던 ‘10년 후 나의 모습’의 유통기한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희망찬 미래를 그렸던 생기발랄한 20대의 나는 30대가 되어 목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위한 계획은 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던 것일까? 새로운 10년 후 나의 모습이 필요했다. 20대 시절 끝없이 부딪히고 깨지며 했던 생각은 내가 ‘원하는 일’이 반드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30대가 되어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며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수 있는 것- 독서와 교육, 내가 한우리 독서지도사를 선택한 이유였다. 떨리고 기대에 부풀었던 한우리의 첫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60여 명의 91기 동기들의 열정으로 가득 찬 교실- 학창시절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운 열기였다. 동기들의 이러한 열정은 나에게 또 한번 용기를 주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지가 되고 격려가 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우리 독서지도사의 강의 내용은 나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전문 분야의 강사들의 강의는 대학 수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하고 전문적이었는데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탄탄한 강사진들은 ‘한우리’의 저력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특히 ‘독서지도’가 단순히 독서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인성을 아우르는 모든 교육의 근본임을 알게 해주는 강의는 독서 지도자를 꿈꾸는 우리들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해주었다.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하는 강사들의 열정은 늘 수업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우리 또한 우리들의 롤모델이 되었던 강사들의 열정에 늘 가슴 벅찬 감동으로 수업을 마치곤 했다.
 
4개월의 과정을 마친 지금,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기대감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어느 강사님이 수업을 마치며 자신의 미래를 마음 속으로 그림 그려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실현된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다시 한번 1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쩌면 20대보다 더 치열한 30대를 보내며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나의 40대. 결코 늙지 않는 열정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나의 모습에 벌써부터 가슴 벅찬 희망이 솟아오른다. 나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토대 한우리- 한우리가 전해준 열정과 희망을 담아 나의 새로운 10년을 위해 나는 오늘 힘찬 첫발을 내딛는다.
33 내 삶의 울림 - 장려상 91기 서울 오전 염희정 1,597 내용 보기 내용 닫기
8시 30분 이라고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상계동, 그것도 서울 끝자락에 사는 내게 아이의 등원 시간은 항상 나를 구속하는 짐이 된다. 가까운 교육원은 폐강이 되고 본사 교육 시간은 도저히 맞출 수 없어 또 수강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이의 배차 시간이 30분이나 당겨진 것이다. 얼마나 기쁘고 고마웠던지……
 
한우리 독서지도사 교육 과정은 오래 전부터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적 제약에 수강을 못한 채 지난해 공부방을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수업을 해 나가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지식에 대한 욕구에 한우리 교육은 더욱 절실해만 졌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에 수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의 첫 날 깊이를 모를 지하를 달려 밖으로 나왔을 때 부딪혔던 그 3월의 눈부신 햇살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왕복 세 시간 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때는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 가끔은 읽고 있던 책에 팔려 내릴 곳을 놓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 번의 결강도 없이 맨 앞줄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수강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딪혔던 한계와 학부모 만나기를 꺼려하던 소극적 성격은 강의 횟수가 거듭 될수록 바뀌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구상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남편 일의 특성상 우리 가족은 외국인과 식사할 기회가 가끔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들은 직업을 묻곤 한다. 자연스럽고 의례적인 질문임을 알지만 점점 그 시간이 부담스러워지곤 했다. 그런데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손님들이 온다고 했을 땐 왜 그리 반가웠던지.....,역시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그들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난 독서지도에 관한 장황한 설명과 함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물론 남편의 통역을 빌어서지만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카졸라는 유럽에서 독서교육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강조하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교육 과정을 마치기도 전이었지만 자신감은 나를 너무도 당당하게 했다. 현재 수업을 하고 있는 내겐 모든 강의가 너무도 중요했다. 강사님 한 분 한 분도 최선을 다 해 주셨기에 끝나는 시간은 늘 안타까웠고 때문에 교육과정이 너무 짧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을 메우기 위해 한우리의 다른 강좌도 찾아보고 또 다른 참고 서적도 살피면서 내 삶이 쉼 없이 진동하고 있음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다. 나의 목표와 그것을 향한 열정이 나를 진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울림이 독서지도사라는 향기를 가지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자극할 것이다.
 
한우리가 내 삶의 새로운 토양이 되었듯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통한 훌륭한 토양이 되어 끊임없는 울림을 전하리라. 오늘도 난 그 울림의 공명을 더욱 맑 게 하기 위하여 지하철을 탄다. 같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선생님들과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남편에게 한마디 묻는다. 8월에 미국에서 손님 오잖아? 그럼 자기도 한우리를 좀 알아야 통역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32 독서지도사 수료 소감문 - 장려상 90기 온라인 박라희 1,968 내용 보기 내용 닫기
2004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해서 ‘문헌정보학’ 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했다. 무엇을 배우는 학과인지 나에게는 생소할 뿐이었다. 그러나 4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문헌정보학’ 이라는 학문에 매료 되었고, 내가 갈 길은 ‘사서’의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스무 살이 넘어 ‘사서’의 꿈을 정하면서 나는 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특히 관련 분야 중 ‘독서 치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관련 강좌를 개설했지만, 사정이 있어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우리 독서지도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독서 치료의 기본은 독서 지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한 치료를 위해서는 독서 지도자의 자질이 우선되어야 더 계획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 나라에서 인정받고 가장 역사가 깊은 독서지도 전문과정이 한우리임을 알고 독서지도사 교육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오프라인 강좌를 듣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온라인 강좌를 수강했다. 온라인 강좌는 교육과정 목록이 한 눈에 보기 쉽게 되어있어 강좌 하나하나를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강좌는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수강했다. 실제 오프라인처럼 계획을 세워 아침마다 독서지도 강의로 하루를 시작했다. 강사 분들의 강의는 그야말로 실전의 교과서였다. 독서지도를 하면서 풀어내는 관련 강좌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독서지도와 관련된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물론 문학사와 같이 이론이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수업도 있었다. 후반부의 독서 지도 계획안과 같은 실전관련 수업은 현 사서직에 있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우리 독서지도사 강좌를 수강하면서 나에게 많은 꿈과 비전이 생겼다. 단순히 독서 치료를 위한 전 단계 과정으로 독서 지도를 수강했던 나에게 논술지도나 영어독서지도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격획득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이런 자격들을 하나하나 갖추어 나갈 때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독서지도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독서지도사는 상대방과 연결의 끈이 될 수 있는 도서의 선정부터 신중해야 하며 도서의 내용을 다양한 방면으로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독서지도사는 책을 통해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 가진 감정을 잘 풀어 낼 수 있도록 독자를 도와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어야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는 말이 있다. 독서지도사는 책 속에 있는 길을 각 사람이 필요에 맞게 자기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표지판의 역할을 정확히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 다양한 주제의 도서를 추천해 주는 것도 필수이며, 독서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주는 일도 독서지도사의 역할이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정보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사람이 바로 독서지도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31 선생님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오산지부 이혜정 1,810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네 이름으로 온 전보다!” 외출했다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두툼한 봉투를 내미셨다. ‘누가 보낸 축전이지?’ 몇 년 전 단편 동화가 당선되었을 때 받아보고 두 번째로 받는 축전이다. 나는 기대감에 봉투를 뜯었다. 꽃다발 가득, 장미향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만 같은 카드를 가슴 두근거리며 여는 순간, “한우리 독서지도사 사례 수기공모전 입상을 축하합니다!” 또렷하게 쓰인 문구가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기쁨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모했던 작품이 금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생각만큼 정성을 들이지도 못했고, 워낙 훌륭한 교사들이 많은 터라 기대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뜻밖이어서인지 기쁨이 더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을 예쁘게 봐주신 분들께는 감사하지만 부족한 글 솜씨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금상이라는 문구가 왠지 부끄럽고 낯설게 느껴졌다. 또 책자로 나온 다는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동상이라도 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과분한 호사다. 어쨌든 이렇게 큰 상을 주신 한우리의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리라. 지금까지 길러 주신 부모님과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묵묵히 밀어주신 어머님과 남편, 부족한 엄마를 잘 도와주는 어린 희철이와 희수, 고모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열심히 해 보세요. 선생님은 꼭 잘 해낼 거예요. 파이팅!” 지부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격려의 전화를 받느라 거의 하루는 전화기에 불이 붙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지부를 하려고 한우리 독서 지도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단지 특별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지부를 열게 되었다. 이 날 걸려온 여러 통의 전화 중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전화가 있었다. 오산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느라 힘들고 지칠 때, 내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던 김성희 선생님의 전화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날 받은 전화 중 내겐 가장 기쁘고 고마운 전화였다. 진정으로 날 생각해 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가슴속을 파고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같이 고생했던 초창기 멤버였던 이유도 있지만 늘 언니 같고, 스승 같기도 한 마음의 기둥이 된 선생님인지라 더 애틋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우리가 아니라면 어찌 이처럼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선생님과 같이 사회교육기관을 떠돌며 공부하던 소중한 시간들이 슬라이드처럼 훑고 지나간다. ‘역사, 논술, 글쓰기, 한우리 특강’등 독서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강의가 있다 싶으면 우리 둘은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 다녔다. 아직 12개월밖에 안 된 아들 희철이를 캐리어에 매달고 강의를 들으러 간 날은, 다른 선생님들의 눈총도 따가울 정도로 받아야만 했다. 혹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수업 받던 교사들의 거센 항의로 좋은 강의를 놓치고 쫓겨나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는 나라도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과 야속함에 가슴 한 켠이 울컥하는 것을 꾹 눌러 삼켜내야만 했다.
 
자화자찬인지는 모르나, 그 덕분에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교사가 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한낱 유치원 교사로 머물렀더라면 내 인생은 너무나 평범하고 지극히 세상적이었을 것이다. 또 감히, 시립도서관에서 쟁쟁한 학력을 자랑하는 어머니들 앞에 당당히 서서 강의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우리를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고,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함이 앞선다.
 
그러나 이런 행복감이 있기에는 시련도 많았다. 오산에서 처음 아이들을 모집할 때였다. 광고를 하며, 오산이 내가 살던 평택보다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은 했었다. 워낙 학교 평이 좋지 않았고, 교육수준이 많이 떨어진다기에 담담하게 욕심을 버리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도 너무했다. 광고를 한 달간 해도 아이들은 모이지 않았고, 오는 전화마다 교육비만 묻고 끊기 일쑤였다. 독서의 중요성을 열심히 침 튀어가며 설명하면 돌아오는 것은 허공 속의 내 메아리뿐이었다. 어지러웠다. 별별 불길한 생각이 다 지나갔다. 나는 점점 허탈해지고 힘이 빠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과연 오산에서 한우리라는 신 독서 교육의 장을 열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섰다. 난 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스물 셋에 처음 직장을 가진 이후로 한번도 쉰 적이 없는 나였다. 만일 누군가 내게 그 만큼 일이 간절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일하기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내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라는 대답이 정답일 것이다. 명분이 좋아 학생이지, 직장 없는 실업자를 남편으로 둔 내 책임감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급했다. 게다가 시어머니께 손 벌리는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했던 나로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모이지 않는 회원을 기다린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비효율적인 발상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했으므로, 배가 불러오면서까지 평택(당시 평택 북부지역에는 한우리 교사가 한 명도 없었다.)으로 계속 수업을 나가길 1년 남짓, 드디어 오산에도 하나, 둘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내 실력을 알아 주는구나 하고, 내심 좋아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상담 오는 학부모마다 ’ 여기 아버님이 초대 민선 시장님이시죠?’하며 말문을 연다. 아버님의 집안사람이면 믿을 만하단 투였다. 그만큼 심지가 굳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아버님의 덕을 보는 것이라 내심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이걸 기틀삼아 내 자리를 굳히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난 다시 광고지를 들고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교차로와 신문을 상대하며, 그 동안 너무 편하게 광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여하튼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뾰족 구두까지 내어 신고는, 광고지 2천 장을 들고 나갔다. 다음날 하혈을 하여 가족의 간장을 졸이면서까지 억척이었던 내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은 탓에 발에는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쓰라린 고통을 맛봐야만 했었다. 뭘 그렇게 해내겠다고 열성이었는지 나조차도 가끔은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했다. 오산에서 가장 훌륭한 독서교사가 되겠다고. 텔레비전에 언젠가 나오던 모 광고처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외치며, 오산의 어떤 교사도 날 흉내 낼 수 없게 할 거라고… ….
 
당시 내가 2천여 장의 광고지를 돌렸던 청구아파트는 오산에서는 가장 최근에 지은 아파트로 평수도 꽤 넓은 편이었다. 그래서 분명 아이들을 모집할 수 있을 거라고 단단히 믿고,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무작정 20층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방법도 없었다. 단지 포항제철도 두려워할 두께의 철가면과 두둑한 배짱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어쩜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20층에서 계단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내 앞날만큼이나 아찔하게 느껴졌다. 계단을 한 층 한 층 내려오며, 현관 앞이나 우유를 수거하는 봉지 속에 광고지를 열심히 찔러 넣었다. 내려오면서 광고지를 넣는 것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임산부의 몸인지라 생각만큼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려오다 집주인과 얼굴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럼 그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인가? 하여 위 아래를 여러 차례 훑어보고는 돌아섰다. 그럼 난 그의 등 뒤에 대고 “한우리 독서 교사입니다. 주변에 아이들이 있으면 소개 시켜주세요!”하며 능청을 떨었다. 포항제철 철가면 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런 내 모습에 웃는 사람들, 그런 것도 있냐는 듯 묻는 사람들, 때로는 무시하거나 의심하는 듯한 곱지 않은 시선을 등 뒤로 느껴야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거의 모든 집에 광고지를 넣는데 성공했다. 뿌듯했다. 아침 11시에 와서 돌린 것이 초등학교 저학년이 끝나는 시간인 1시 반경이나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내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까? 막 일을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의 울림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어머니의 음성, 분명 신규회원이었다. 갑자기 팔, 다리 아픈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나았다. 무사히 상담을 끝내고, 3명을 한 팀으로 구성하여 그 주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팀도 늘려갔다. 그런데 의외로 먼저 생긴 ‘A사’에서 이미 독서지도를 받았던 아이들이었고, 난 그 회사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타 브랜드에 무식한 초보였다. 하지만 배짱과 추진력만은 유치원에서 잔뼈가 굵은 나였다. 원감도 했었기에 학부모 상담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비슷한 타사 브랜드를 두려워하지 않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신조는 지금도 변함없지만, 유치원 교사 시절에도 소파 방정환 같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방정환 선생님이 한 분이듯, 나 또한 현대의 방정환으로 유일한 선생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시도하는 것은 특별한 독서지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창의적인 독서지도였다. 그 앞에서 는 ‘A사’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떤 것이 온다 해도 전혀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누구든 상대해 줄 테니 나와 보라는 듯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농사에 관한 이야기가 테마일 때는 직접 박물관에 다니며 현장학습을 해서 실제 체험을 글로 옮겼다. 당연히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진을 첨부한 보고서 작성은 기본이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상들의 의식주 생활을 멋진 책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급기야 어떤 아이들은 이런 자료들을 방학숙제로 내기 시작했고, 한우리에 다니면 방학숙제 걱정은 없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들도 한우리를 알기 시작했고, 어떤 경우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신입회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생각보다 큰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난 이것을 기회 삼아 몇몇 학교에 독서 신문을 꾸준히 보내주고 있다. 지금도 가끔 학습지 교사들의 소개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수업으로 아이들을 독서의 매력 속으로 끌어당겼던, 내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요즘 초등학교에서 원하는 숙제는 교과학습이 위주가 아닌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자아실현학습 결과물을 자료로 내는 것이 많다. 내 계산과 현 학교 수업형태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로선 내심 반가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몸은 힘들어도 난 요즘 물오른 고기란 이런 거구나!’ 느끼며 산다.
 
물론 어렵고 힘든 고비는 항상 있었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푸른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 듯, 더 멋진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고비를 기다리며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생겼다. 이 지혜를 나만의 소유로 삼지 않고 우리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있다. 요즘은 더 좋은 의견을 내놓는 부혜성 선생님, 꼼꼼하고 세심한 이은주 선생님 외 여러 선생님들 때문에 흐뭇하고 즐겁다. 나는 거의 6년 동안을 소속 선생님 하나 없이, 독보적인 존재로 독서지도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롭게 달려왔다. 그래서 입회를 원하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받지도 못하고, 대 기회원으로 남겨두기도 해 때로는 도도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거의 독식을 하다시피 했었다. 가르치려 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 하나하나가 내 아이라 여기며 사랑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며, 기존에 있던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도와 주고 싶었기 때문에 40명 이상은 받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최근 2년 사이에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들어오면서 오산도 드디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회원도 많이 늘고 수업의 질도 향상되었다.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스터디 활동을 통해 교재를 연구하고 있으며, 활용할 아이디어와 문제점 등을 해결해 나간다. 그 결과 지금은 경력이 1~2년 밖에 안된 선생님도, 벌써 30~4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창기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가 처음 광고를 해서 받은 아이는 고작 2명이었다. 그것도 1학년으로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습부진아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학습부진아를 대상으로 독서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책의 내용 파악이나 독후감보다도 한글을 깨우쳐 주기 위해 1년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동시쓰기를 즐겨하는 어엿한 5학년으로 성장했다. 한우리 경시대회에서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실력도 쌓였다. 그렇게 기약 없이 시작됐던 2명의 회원이, 6개월 만에 선생님 2명에 회원은 25명으로 늘고, 1년이 지나자 38명, 2년에 50여 명, 3년에 70명, 이렇게 서서히 늘어 지금은 지도교사 5명에 150여 명의 회원을 가르치고 있는 지부로써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남들은 ‘고작 그 인원이 뭐가 많다고 그리 자랑이냐?’하겠지만, 불모지에서 이 정도 개척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위안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5~6년차 회원이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점에서 아이들이 오랫 동안 학습해도 질리지 않는 독서지도를한다는 자부심과 그만큼 부모님들이 믿어 준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늘 고마워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그리고 진실로 예뻐하는지를 금방 안다는 것이다. 또한, 선생님의 됨됨이와 가르침은 어떤지를 스스로 생각하며 다닌다는 사실이다. 교사의 자질을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다닌 아이들은 대부분 서너 달, 길어야 1년 안에 그만둔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좋아서 다닌 경우는 장기 회원이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는 독서 선생님은 교사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삶에 관여하는 정신적인 부모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난 믿는다. 이건 또 무슨 괴변이냐는 반론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독서 교사는 아이들과 때로는 친구도 되고, 편안한 언니도 되고, 따스함이 넘치는 엄마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내 자식처럼 예쁘게 본다면, 그 아이를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수업이 안 될 정도로 글을 못 읽는 아이도,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도, 친구의 돈을 뺏는 아이도 마냥 예뻐 보인다. 그 아이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아이는 어른들의 잘못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른들이 신경만 써준다면,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로 바꾸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특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보물지도와도 같기 때문이다.
 
언젠가 돈을 훔치는 아이가 있었다. 큰 액수의 교육비와 한 그룹의 친구들 돈이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내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며 조심했지만, 일은 점점 커졌다. 결국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아이 하나가 제법 많은 액수의 한 달 용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설여졌다. 조용히 해결할까? 아님,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혼내야 할까? 믿었던 아이였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적잖이 고민해야만 했다. 그런데 불현듯 ‘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 아이에게도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으리라 여기고 하나씩 풀기로 했다. 알아본즉, 그 아이의 엄마도 아이의 그런 행동을 짐작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터라 생각보다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확실히 부모의 무관심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주고는 해줄 것을 다 해줬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짙다. 그러나 옛말에도 있듯이 아이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의 관심과 진정한 자식 사랑이 더 필요하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눌 때, 우리 아이의 정서가 불안해지고 있음을 걱정하고, 엄마가 집안일에 정신없어 아이와 대화를 나누지 못할 때, 우리 아이는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가장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의 가녀린 아이들을 부모들이 좀더 따스한 관심으로 다독여 주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본다. 한우리와 인연을 맺은 후, 6년 동안 기쁘고, 슬프고, 가슴 터질 듯 겁나고, 무서운 일도 많았다. 또한,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흐뭇했던 순간들도 발 빠르게 지나간다. 처음 내가 한우리 교사에 발을 디디던 순간이 떠오른다. 스물세 살. 갓 유치원 교사로 부임하여, 물방울 같은 꼬마들을 지도하던 나는 우연히 신문 한 귀퉁이의 한우리 독지사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고, 한참 배움에 열기가 오를 대로 올라있던 터라 몬테소리 교사 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독서지도사 과정에 용감히 도전장을 내던졌다. 어리고 젊은 혈기에 했던 일이지 아마, 지금은 누가 돈 줄 테니까 하라고 떠밀어도 못할 것이다. 당시, 그 신문은 원장님의 자장면 그릇 위에 덮여 있었다. 만일 다른 선생님이 그릇을 내어갔다면, 아마 난 지금도 한우리에 대해 모르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쳐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문 기사가 내 눈에 띈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그 후로 3년을 유치원에서 지내고 결혼과 동시에 한우리 교사로 발길을 돌렸다. 한우리 교사 생활을 6년째 하는 동안, 얼마나 내 직업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신랑은 처음 만날 때부터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결혼한 지 6년째가 되는 지금도 여전히 학생이다. 다행히 내년 2월이면 박사 학위를 받게 되고, 드디어 학업에 종지부를 찍게 되겠지만,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관문을 남기고 있다. 그 점을 직시할 때 한우리가 우리 가족의 마술 식탁보였으며, 일등 공신임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6년 간 신랑의 공부를 뒷받침해 주고, 아무 문제없이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두 아이도 건강하게 잘 키워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만한 일등 공신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만일 한우리 교사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얽매이지도 않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으며, 내 노력에 따라 시간도 맘껏 조절하여 쓸 수 있고 말이다. 이만하면 선진국형 직업이라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우리 교사 생활을 하면서 또 하나 내가 감사하는 것이 있다면, 날개를 잃은 천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난 처음부터 내 일을 가지게 되면, 보육원 아이를 돕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렸을 때 20번이나 읽었던 ‘빨간 머리 앤’과 ’집 없는 천사’ 같은 책들에서 많은 감동을 받은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 사랑방을 냄과 동시에 그 일을 실천했다. 처음에는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아직 아기가 어리니 다 키우고 하라는 시어머니의 반대와 신랑의 반대를 꺾기에는 다소 시일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도 못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졌던 꿈인, 보육원 원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만 했다. 가족에게 밉보이기는 잠깐이지만, 내 추진력을 잃으면 교사로서도 위험하다는 내 결심이 날 강하게 만들었다. 있을 때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난 잘 알기 때문이다. 배부른 돼지는 배고픈 양의 슬픔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들은 삼성이나, LG같은 그룹의 재벌들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 동네 떡볶이 할머니고, 구두닦이이며, 학교 앞 김밥 아줌마다.
 
이렇게 이틀 간을 애교도 부려보고, 양심에 호소도 하며 다양한 작전으로 설득한 결과, 드디어 원하던 보육원에 봉사를 나갈 수가 있었다. 허나, 내가 벌인 일인지라 시어머니의 눈치를 봐 가며, 가끔은 두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다. 2살 때부터 데리고 다닌 큰 아이 희철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됐고, 제법 의젓해졌다.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17개월 된 딸아이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하늘의 뜻인지, 아이가 내 맘을 알아주는 건지, 수업할 동안은 군소리 없이 낮잠을 자거나, 자기 오빠와 잘 논다. 고집을 부리고 다니는 나로선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보육원 봉사를 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째가 되어간다.
 
그 동안 늘 글쓰기 상을 받아 오던 똑똑한 지은이, 사슴같이 슬픈 눈을 한 상미, 언제나 즐거운 선우, 독서의 참맛을 알아가는 일화 등 모든 아이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친엄마가 데려간 아이들도 몇 있지만, 다시 되돌아오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곳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느끼지 못해서다. 그래서 가끔 수업이 많아 힘들어 한 주 정도 쉬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나마저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가 나타나면 꼭 끌어안는 그 가녀린 손들을 오늘도 꼭 만져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보육원 아이들이나 우리 회원 아이들이나 순수하고 밝은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부모와 함께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차이만이 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그 차이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대화가 적거나, 아예 대화가 없는 가정이 많다는 뜻이다. 중, 고등학생이 될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우리 교사들만이라도 아니, 나만이라도 이 점을 고려하여 아이들에게 제 2의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면 한우리는 영원히 아이들과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제의 일이다. 그만 둔 지 3년이나 지난 아이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가 지도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 기억하는데, 갑자기 걸려온 낯선 목소리에 의아했다. “선생님, 저 이슬이예요. 안이슬!” 기억을 더듬어 떠오른 아이는 1학년인 자그마한 여자 아이였다. “아 그래, 안 이슬 기억난다. 어머, 반갑다. 이슬아! 그런데 어떻게 전화를 다 했니?” 뒤이어 들려오는 이슬이의 말에 난 흐뭇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지난 10월 12일 일요일이었다. 난 환경단체와 함께 몇 명의 회원들을 데리고 철새 관찰과 갯벌탐사를 다녀왔다. 환경에 대해 좀더 잘 알기 위해서였고, 새로운 사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연히 수원방송이 촬영을 나왔다. 갑작스런 요청에 인터뷰에 응했고, 나를 비롯하여 우리 회원들의 활동 모습이 채널 5번에서 5분 정도 방송됐다. 난 한 번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글쎄 10월 한 달 간 재방송까지 열여섯 번씩이나 방송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 덕분에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안부 전화 받기에 바빴다. 누군가는 즐거운 비명이라고 놀렸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꽉 차는 모습을 봤다면, 아마 그런 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용케 날 기억하다니, 그래도 그 얼굴 어딘가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와 비슷하긴 했나 보다. “전, 처음에는 선생님이 아니신가 했는데 아래 자막으로 ‘한우리 오산 지부장 이혜정’이라고 나와서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하는 것이다. 얼굴이 브라운관에 꽉 차게 나와 돼지처럼 보였을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잊지 않고 전화해 주는 녀석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늘 웃음으로 편하게 인사를 건네던 이슬이 엄마의 전화까지 바꿔 받고 나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렇게 잊지 않고 전화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그래서인지 한우리 교사를 하면서 늘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알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새벽에도 문자를 보내며 날 찾는다. ‘신해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냐? 청조 타도는 무슨 뜻이냐? ‘전형적인’은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며 문자를 보낸다.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새벽 3,4시에 잠이 든다. 그래서 어떤 날은 코피를 흘렸던 적도 있다. 평균 4시간 정도 잔 달에. 그래서 요즘은 건강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고 날 타이르며 낮잠을 자보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은 정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그런 태도가 날 더 능력 있는 교사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여긴다.
 
이제 오산은 한우리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 높아져 있다. 차량운행도 하지 않는 우리지만 늘 신입회원이 늘어가고 있다. 그 중에는 수원에서, 평택에서 버스로 등하교하며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게다가 새로 오는 회원들은 민들레, 개구리 논술, 웅변, 논술학원등을 두루 거치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보내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체계적인 학습을 받고 싶어서라고 거의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다. 한우리 수업이 체계적인 수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큼 오기까지는 한우리 본사 직원 및 연구원들의 무수한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우리 오산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수업을 받는 동안이나 한우리에서 지내는 순간만큼은 어떠한 상해에도 책임을 져주는 ‘어린이 상해보험’을 단체로 가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또한, 달마다 테마 둥지를 정하고 필독서와 연계하여 박물관, 미술관 등을 견학하거나, 실제로 과학 실험 등을 해나가며, 테마 둥지의 아이들은 특별 평가서를 작성하여 학부모에게 편지를 띄우게 된다. 예전에 내가 혼자 있을 때 했던 방법들을 지금 다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1년에 2번 정도 각 둥지마다 골고루 아이들을 평가할 수 있게 되고, 철저하고 각별한 회원 관리가 되며,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장단점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 선생님에게는 평생의 수업 자료와 자신만의 노하우가 저절로 생겨 훨씬 일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우리 회원들은 부모님의 기대보다 상을 타지 못할 때도 있다. 숙제로 내줄 경우 반장이나 다른 아이들이 거의 다 휩쓸어 간다. 그러나 학교에서 백일장 형식으로 모든 학년이 글을 써서 그 자리에서 제출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2~3년 이상 독서를 공부한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상을 받아왔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의 글은 자신의 실력으로 쌓아졌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어디에 내보내도 어른들의 도움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 주는 것, 보다 맛있게 글쓰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책 속의 매력으로 푹 빠져 헤엄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난 현재 이루어 가고 있다. 찬란한 별꽃이 흐르며 반짝이는 소중한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
30 책가방의 비밀 부산진지부 심지연 1,739 내용 보기 내용 닫기
어떤 환희의 순간이 나에게 왔을 때 물풀처럼
흐느적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색깔 하나가 있다.
어린 시절 이른 봄,
나는 일생에서 잊지 못할 어떤 색깔과 마주쳤다.
저수지에서 돌멩이를 뒤적이고 엎어보는 장난을 치다가
연노랑 아기 쑥을 발견하게 되었다. 돌멩이 아래 깔려 줄기가 휘어진 채로
바깥 세상에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연노랑 아기 쑥.
푸릇푸릇 싱싱한 진초록 쑥만 보아왔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쑥의 색깔과
휘어진 자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도 어쩜 이런 것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하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쑥이다. 돌멩이에 깔려 휘어진 형태로 있더라도
언젠가는 세상과 교감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면서 꺾이지는 않았다.
나의 글이 이제 막 독서지도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한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이 땅의 모든 한우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당선 소식을 접하고 울먹이며 축하해 주셨던
부산진지부 유혜영 지부장님과 동료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1. 들어가며
나의 책가방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마치 세상 시름을 다 잊고자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짙은 색 여행용 가방을 끌고 거리에 나서면 안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곤 한다.
“여행 가시나 보네요. 좋겠어요.”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는 장거리 손님을 맞이할 때의 그 환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공항으로 모실까요?”
나의 책가방을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때 진정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그건 나 혼자만의 독특한 설렘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처음에는 소리내어 웃다가 차츰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렇구나.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중이구나. 가방 속의 내용물이 화사한 옷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책이라 는 점만 빼고는 좋은 곳으로의 여행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이 글은 3년 전부터 책가방을 끌며 여행을 다니고 있는 나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2. 새로운 시작
결혼은 나의 선택이었다. 연년생을 낳고 정신 없이 육아에 매달리고 있을 즈음, 두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순간, 나는 그 선택 안에서의 또 다른 선택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의 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열망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용솟음쳤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에는 당시 바둑 모임에서 만난 40대 언니의 충고가 결정적이었다.
“할 것 있으면 빨리 시작해.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적을 때. 안 그러면 후회하게 돼.”
연년생 아이를 나 혼자 키워야 하는데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역시 나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듭 거듭 고민하고 있을 때 바둑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장고 끝에 악수 난다.’즉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나서 한 수를 두면 좋은 수가 안 나온다는 이야기. 그 길로 방송통신대학교 원서를 사러 뛰어갔다. 87학번이던 내가 97학번 편입생이 되는 순간이었다. 국어국문학과 3학년 편입생이 된 나는 아주 오래된 꿈 하나를 이루어 낸 사람처럼 황홀해 했다. 스터디 모임에 빠짐없이 나가고, 밤을 새며 공부한 결과 2년 후, 부산 지역 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35기 한우리 독서지도사 양성 과정에 등록했다. 왜였을까? 신문광고를 보는 순간‘넌 내 거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친했고, 연년생을 기르면서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나. 아이를 업고 시장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서점이었다. 근사한 옷을 입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책 한 권 사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행복이었다. 나와 너무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 또 공부를 시작했다. 통신 강의를 듣고 한 달에 한번 있는 서울 본부 출석 강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드디어 나는 ‘한우리’라는 글자를 보고 느꼈던 첫 느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독서지도사가 되었다. 지부에서 운영하는 교사모임에 열중하면서 수업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수업 모형을 분석하기도 했다. 지부에 나가는 날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약속 시간 하나만은 칼같이 지켰으며, 지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자청해서 청소도 곧잘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드렛일을 했다. 그냥 사람들이 좋았고 내가 좋은 일을 한다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그러나 나에게 당장 수업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부산에서는 한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거기에다 나의 집은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지부에서 바닥 닦고, 커피 잔 씻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3. 첫 손님 동국이
어느 날, 길을 가다 동국이 어머니를 만났다.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을 나왔던 터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동국이 어머니는 내가 지속적으로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셨다. 동국이, 나의 딸 친구, 다른 남학생. 이렇게 첫 손님들이 나의 품안에 들어 왔다. 최초라는 그 느낌이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다. 지부장님께‘저도 이제 수업해요.’라고 외쳤고, 우리는 깊은 악수를 나누었다. 이기고도 배가 고프다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나는 수업에 고파 있었고, 참새 둥지 한 팀을 위해서 몰두하고 또 몰두했다. 주택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권유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나의 이런 열정과 상관없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동국이는 1학년치고는 덩치도 좋고 주먹도 셌다. 한마디로 야생마의 기질을 닮은 아이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렸고, 급기야 독서 클럽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동국이 어머니와 다른 어머니들과 상담도 해보고, 아이를 타일러도 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동국이는 수업을 재미있어 했고 첫 손님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아이라 나에게는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색다른 부탁 한 가지를 했다.
“동국이는 아버지가 안 계시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 차가 많은 누나 둘만 있고, 어머니는 직장에 나가시니까 아이가 아빠 같은 어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하루만 동국이 아빠 노릇해 줘요.”
남편에게 남자가 힘을 써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에 대해서 동국이에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 동물 병원에 있는 검정 진돗개를 데리고 산행 길에 올랐다. 동국이는 무척 신나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덩치 큰 진돗개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멈칫거리는 남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며 작업에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남편은 조근조근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이의 생각 높이에서‘남자의 힘’에 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동국이와 함께 들꽃 한 다발을 만들었다. 자식 키우면서 마음 상했을 동국이 어머니를 위한 꽃다발이었다. 산행 후, 동국이는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목소리 큰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남학생이 되었다. 3학년이 된 지금도 나의 제자로 남아있다. 훗날 동국이가 어른이 되면 그 때의 산행을 기억할까?

4. 부산의 명문 국제중과의 인연
“심 선생님, 중학생 수업 한번 해볼래요?”
지부장님은 나에게 중학생 수업이 잘 맞을 거라며 적극적으로 권유하셨다. 보통 중학교가 아니고 입학 경쟁률이 엄청나며 전원 기숙사 생활에, 한 학년이 6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특수중. 부산 시내에서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는 모두 가고 싶어하는 그런 학교라는 것이다. 까치 단계의 필독서와 교재는 교사 생활 초기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까치 단계의 수업이 초등 단계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들이 수업 시간을 토요일 밤 9시로 정했다는 것이다. 남편과 두 아이의 반대가 극심했다. 주말에는 가족과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거기다가 아이들도 아직 어렸다. 이때 나는 삼십 몇 해를 살아오면서 터득한 결정 방법을 그대로 따랐다. 일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맞게 최선을 선택할 것. 나에게 가족은 우선 순위 1위다. 그 다음은 나의 일이다. 1순위와 2순위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보자. 시간 활용만 잘 한다면 괜찮을 거야.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 어떤 수업보다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구했고, 자료를 만들었다. 교재 내용뿐 아니라 필독서에 따른 개인 자료, 신문 자료를 대하는 학생과 어머니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여기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아이 세훈이를 만났다. 얼굴에 여드름이 숭숭 돋기 시작한 세훈이는 수업 태도가 진지하고 무척 성실했다. 수업 받는 장소와 집까지의 거리가 멀었던 세훈이를 위해 토요일마다 어머니는 운전기사가 되어 주셨다. 수업 한 달째, 어머니는 더 이상 힘들어서 데리고 다닐 수 없노라고 하셨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다른 일을 전혀 못 보시고 아이에게 매달려야 하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그러나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왔다. 세훈이가 수업을 계속 받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선생님은 가르쳐 주신다고, 뭔가 색다르다고 어머니께 애원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세훈이는 나에게 왔고, 2학년 후반이 된 지금까지 수업 한 번 빠진 적이 없는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세훈이 팀에 이어 세훈이 형 팀도 들어왔다. 수업 의뢰가 계속 들어왔고 나는 토요일에 두 시간씩 4팀 수업을 하고 밤 12시에 귀가하는 교사가 되었다.

5. 날개를 달다
중학생 수업에 이어 대단지 아파트 수업의 호응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신뢰할수록 가슴이 벅찼다. 나름대로 수업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입 소문이 빠른 대단지 아파트에서의 수업은 한우리 전체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기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수업 전날 저녁에 항상 아이들에게 전화를 주었으며 어머니들과의 상담도 이때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옷을 잘 입는 편은 아니지만 깔끔한 인상을 주려고 애썼다. 어머니들과의 직접 상담에서는 내가 자식을 키우는 입장과 마음 자세로 접근을 시도했다. 항상 들어주는 자세를 취하다가 나의 의견을 말할 때는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종달새부터 까치까지 여러 단계를 맡고 있으면서도 수업 시에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수업이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올 때가 가장 두렵다. 어디까지나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싶기 때문이다. 교사들과의 관계도 호의적이면서 긴밀하게 유지했다. 수업을 많이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 이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같은 교사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가에서 교사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의식하게 된다. 교사 생활 3년차, 50명 선을 유지하는 회원 수, 중학생만 5그룹. 단순한 숫자 계산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의 땀과 열정, 수면 부족으로 인한 토막잠의 진리가 여기에 숨어있다.

6. 세상에서 하나뿐인 수업을 위하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넓게 혹은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부모 쪽에서 단기간 효과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이런 반짝 공부, 찍기 공부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오로지 좋은 대학 진학에 목숨 거는 사람이라면, 이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평생을 통하여 꾸준히 하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그들이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특히 여성 고급 인력들이 가정과 육아에 묻히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여기서 가정과 육아에 묻힌다는 의미는 가정과 육아를 무기로 자기를 합리화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면서 왜 부모들은 공부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는 책 읽기를 강요하면서 왜 부모들은 정작 읽어내지 못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모든 기운을 뺏길 이유가 없다. 아이는 자라면서 공부를 해야 하며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특히 대학교 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며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읽을 줄 알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용어를 좋아한다.
‘Late Bloomer _ 늦게 꽃피는 아이’
나는 그 동안 멀리 보는‘나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 팀의 수업을 위해 여러 가지 수업 모형을 만들고 적용시켜 보기도 했다. 항상 좋은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나와 여러 선생님들의 이런 시도가 현재의 결실을 맺게 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교사는 실력만으로 인정 받기는 어렵다.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밑바탕에는 인간미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다음 기록은 나의 수업을 위해 내가 기울였던 노력들을 정리한 것이다.
① 수업 전의 자세
* 교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선임 교사들을 통해 교사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공부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일이 힘들어진다.
* 시간 약속을 잘 지켜라. 항상 늦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라. 특히 홈 클럽 수업일 경우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나는 문화원에서 수업이 있을 경우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나가서 계단 청소까지 마쳐 놓는다.
*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라. 자신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교재 내용에서 보강할 것이 있다면 자료 준비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독서 수업일 경우 줄거리 자료를 풀어 보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문 자료를 열심히 만들다 보면 자료를 보는 안목도 기르게 된다.
* 수업 전 날 반드시 전화를 하라. 특히 대단지 아파트일 경우 꼭 필요하다. 쉬운 일 같지만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고, 학부모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전화 예절은 꼭 지켜야 한다.
* 교사 자신의 자식을 관리하라. 실제로 가장 많이 고민되는 부분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충분한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외부 수업을 나갈 경우 아이를 위해 꼭 편지를 써 놓고, 간식을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아이와 같이 대화 일기를 쓰면서 욕구불만을 해소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 자식을 잘 길러야 한다.

② 수업 시의 자세
* 단정한 옷차림, 밝은 얼굴을 유지하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집에서는 꼭 그 분들께 인사부터 하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다. 교사는 생기 있게 보여야 한다. 때로는 아파도 참아야 한다.
*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 행동 등에서 과장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딱딱한 수업은 교사나 아이들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 교재 연구할 때부터 부분 부분마다 강, 약의 시간 조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시간에 해야 할 것은 해야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수업 시에 실패하지 않는다. 적정선에서 교사의 통제가 이루어져야 수업에서 성공한다.
* 신문 자료를 적극 활용하라. 어린이 신문과 일간지, 시사 주간지 등을 두루 보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자료를 만들 수 있다. 일기와 연결시킨다거나 논술문 주제로 활용하기에 좋은 자료이다.
* 쓰기를 꼭 시켜라. 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경쟁사에게 밀리게 된다. 개요 잡는 연습부터 꾸준히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시작, 끝인사 나누기를 하라.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인사를 나누는 것과 나누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사를 나눌 때 교사와 아이 사이에서 좋은 감정이 싹트게 된다.
* 숙제 검사를 엄격하게 하라. 과제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야 하며 약속을 어겼을 경우 처벌을 내려야 한다.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냐, 적정선에서 넘어가 줄 것이냐는 교사 개인 판단에 달렸다.

③ 수업 후의 자세
* 학부모 상담 시에는 잘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눈을 부드럽게 쳐다보며 동의를 나타내는 간단한 추임새를 넣어 주는 것이 좋다. 이때부터 교사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한다. 잘 들어준 후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말끝을 흐리지 말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가 있을 때는 즉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전달 사항이나 전화를 해야 될 사항이 있다면 즉시 하는 것이 좋다. 일 처리가 늦어질 경우,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 첨삭 지도를 대화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초등생이나 중학생이나 첨삭 끝머리에 선생님이 쓴 글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격려의 말, 자연현상의 변화, 선생님의 하루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써주면 아이들은 기뻐한다. 부모님 사인을 꼭 받게 한다.
* 자금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회비가 월급날처럼 정해진 일시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므로 날짜 기입을 그때그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비는 한달 계속 들어온다. 교사가 신경 쓰지 않으면 교재비 내는데 급급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수업비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지부와 회사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교재비를 제때 완납해야 한다. 이 자금으로 회사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 수업을 그만두는 아이에게도 처음 왔을 때처럼 대하는 것이 좋다. 아이를 보낼 때 자그마한 선물을 준다거나 좋은 책 한 권과 함께‘그 동안의 좋은 인연에 감사 드린다’는 내용의 메모를 보내는 것이 좋다. 아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서 연계 수업을 원할 경우 수업 내역서를 차기 교사에게 보내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이런 형태의 서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했다.

7. 한우리 독서지도사의 매력
사람들은 내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 수업, 집안일, 아이들 교육. 어떻게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느냐는 것이다. 물론 만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단련되는 것이다. 일을 시작한 후, 이 세 가지 일밖에는 다른 여유를 부릴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때는 길거리에서 헉헉대며 뛰어다니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화, 토요일에는 귀가 시간이 밤12시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정말 하늘의 별을 보며 들어온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 무엇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좋다. 한가한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신발을 벗은 채 눈을 감고 담벼락에 서서 해바라기하고 있는 이유를, 지하철을 기다릴 때 뜨거운 종이컵을 두 손 가득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이유를, 나의 두 아이와 손잡고 영화관에 갈 때 함박 웃음을 짓는 이유를… …,아이가 전 재산 오백 원을 금덩이처럼 아끼듯 시간을 아껴가면서, 원자를 쪼개듯 시간을 쪼개어 가면서 사는 사람들은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짧은 시간이 그토록 눈물나게 소중한 법이다. 꽉 매여 있는 시간보다 내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업 시간, 무엇보다도 순수한 아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대한민국의 어른으로서 아직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힘이 들면서도 행복하다. 초롱초롱한 꼬마들의 눈망울에서 진지하고 이지적인 청소년들의 눈망울까지, 자기가 쓰다 만 지우개를 선물하는 애송이부터 대학생이 되면 선생님과 생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여드름쟁이들까지. 이 아이들이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 오늘도 이 땅에 두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8. 나오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작가 공지영의 소설집 앞장에 우뚝 서 있던 글귀를 이 자리에 옮겨 본다. 나는 희망한다. 나 자신이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기를.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후회 없이 가기를. 내가 가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그래서 교사인 나와 아이들이 함께 성숙해 나가기를. 그 정서적 공감대를 잘 유지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늦가을 은행잎 뒹구는 거리, 어느 나무 아래 내가 서 있다. 여행용 가방에 책을 가득 품고서 그렇게 서 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잠시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 참 좋겠다… …, 그들이 생각하는 여행과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 다를지라도 그들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내일도 늦가을 햇살이 나와 나의 책가방을 따스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29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한우리! - 최우수작 84기 서울 야간반 박미연 3,965 내용 보기 내용 닫기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즐겨하고 책 읽기를 가장 좋아했던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적으로 대학도 문예창작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지도했지만 그야말로 그 수업은 글쓰기만을 다루는 것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독서라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유익한지를 직접 느끼게 해 줄 수 있고, 논술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사고능력을 표현하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지도할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은 직장생활을 해 봐야 사회를 접할 수 있을 거라는 부모님의 충고로 대학 4학년 때 교육정보 회사에 들어가 2년간 일을 하였다.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것을 손에 놓지 않았지만 매번 한계를 느꼈었다. 직장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날 때 즈음, 이제는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밑바탕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우연히 신문에서 '한우리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모집'이라는 안내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동안 생각해 온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회사생활을 접고 한우리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 과정을 한꺼번에 등록했다. 정말 큰 마음먹고 의지를 다져 두 가지 과정을 같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독서지도사는 야간반을 수강하고 논술지도사는 오전반을 수강하면서 시간 날 때에는 책을 읽고 과제를 하면서 틈틈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을 수 있을까 주변에서도 염려를 하고 스스로도 괜히 두 가지를 하다가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 도전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독서지도사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교사의 욕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떤 점을 느끼고 하고 싶어 하는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작은 책 한 권으로 정말 많은 독후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독서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전 과정의 집합체라는 것을 실로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독서지도사 수업은 아이들을 지도할 때 느꼈던 의구심과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다. 전자 정보 매체가 발달한 요즈음 왜 종이로 된 책을 고집해야 하는 건지,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글쓰기를 지도해야 하는 건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학부모는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음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전국에 있는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을 비교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한우리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성과 다양성이었다. 대개의 독서지도사 양성과정 프로그램은 한 두 명의 교사가 일관되게 모든 과목을 지도한다. 또한 한우리만큼 다양한 필독서에 대한 과제가 없다. 하지만 한우리 수업은 여러 명의 전문 강사가 각 과목을 가르쳐주었고, 과목도 가장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매주 과제는 아주 얇은 그림책도 샅샅이 살피면 새로운 사실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소중한 보석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고, 책 한권에 담겨있는 정성과 깊은 의미를 느낄 때마다 감동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6개월 과정 중 주로 앞부분에는 이론 강좌, 뒷부분에는 실습위주의 강좌가 많은데 적절히 혼합해서 구성을 한다면 부담감이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논술지도사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발전시키는 것 또한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논술이 무엇인지, 논술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논술을 가르치는 교사의 매력은 수학이나 사회와 같은 교과목처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 매번 바뀌는 사회 문제나 흐름에 대해 교사도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논술지도사 수업을 듣는 과정 내내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은지 또 하지 못한 공부가 아직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이 갑갑하였지만 새롭게 배운 것들로 내 안을 채워간다는 행복감도 동시에 있었다. 또한 논술에서의 글쓰기는 표현하는 방식일 뿐 그 밑에는 수많은 배경지식과 사고력, 논리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 바탕의 핵심이 독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다. 과정이 끝난 지금 나는 새로운 내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한우리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저 선생님과 수업하면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책은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고 좋은 상담자가 된다는 것을 일깨우는 교사가 되는 것이다.

수료를 하기 전 나는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하고 싶어서 논술지도사 시험에 응했었다. '최종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그 어떤 합격 소식보다 날아갈 듯 기뻤고 가장 값진 결과물이었다. 따로 공부할 생각보다는 수업시간과 과제에 충실했던 것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격시험에서의 가장 큰 핵심은 수업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쌓이는 배경지식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지도사'하면 주부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는 많은 공부를 하고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부지런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직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 젊은 사람들도 일찍부터 한우리를 만나 자신을 개발할 수 있으면서 전문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갖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는 단기간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하면 가장 오랫동안 다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직업이 좋다.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에 설렌다. 그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보다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훨씬 행복해짐을 느낀다. 배움의 열망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새로운 책을 접할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 다른 열정이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다. 한우리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알려준 곳이다. 다른 사람들도 한우리를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28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 - 우수작 이강선주 3,481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내가 독서지도사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3학년때였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지방의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 과정에서 독서지도사를 접하고 수강했었지만 한 달 정도하고 그만두었다. 내가 바라던 그런 내용이 아니였고 앞으로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뒤 4학년에 올라가면서 학원강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낱말 뜻도 모르고 책에 전혀 관심없는 아이들을 책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로 바꿔주고 싶었다. 재미있는 방법으로 내가 먼저 전문가가 되어 가르쳐야겠다는 생각 중에 선택하게 된 것이 한우리였다. 작년 12월 한우리과정중 독서지도사와 논술지도사 과정에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본부에 등록하러 가기전 전화로 문의에 대한 담당 선생님의 진심어린 걱정의 말
“두 가지 과정을 등록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과제도 있고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독서지도사 과정 수료 후 논술지도사 과정을 듣는 게 공부하는데도 편하실텐데요.”
이 말은 보통 두 과정을 한 번에 수강한다면 좋아하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사라지게 하는 말이였고 배려와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다. 수강 등록하면서도 걱정해주시는 담당자의 말에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다들 이렇게 걱정하는데 해낼 수 있을까?’
독서지도사 과정이 먼저 개강하고 논술지도사 과정이 한주 뒤 개강. 독서지도사 과정은 처음 생각했던 두려움에 비해 알수록 재미있었다. 그러나 논술지도사 과정은 나에게 갈등을 일으켰다. 논술 쪽에 무지해서 그랬는지 어려웠다. 당장 눈앞에 과제를 보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때 담당선생님들이 왜 그러셨는지 알 듯 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한번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6개월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독서지도사 과정은 내가 모르던 그림책에 대한 많은 것들과 실질적인 현장에서의 지도방법, 사례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서종류별로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어떤 책이 좋은지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림책의 크기와 그림이 차지하는 정도가 다 의미가 있다는 것 등 새로 알게 된 여러 가지를 쫑알쫑알 떠들어대게 만들었다. 수료식날 모범상까지 받게 되는 영광까지 안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야간반의 특성상 2시간 강의가 이뤄지는데 좀 더 길게 들었으면 했다. 워크샵 참여도도 야간반은 낮아서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남는다.
논술지도사 과정은 각 과목별 교수님들이 오셔서 강의 해주시는데 강의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논술지도사는 만능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사, 한국사, 과학사, 문학 모든 것들에 배경지식이 있어야했고 세계사, 한국사, 과학사 관련 책들을 사서 읽음으로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이 생기면서 알고자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과제에 대한 첨삭 점수는 고개를 못 들게 만들었다. 6개월 과정 중 제일 두려웠다. 그래도 첨삭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두 과정 모두 수료한 후 책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달라졌고 약간의 편독을 했던 독서습관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전보다 더 많은 종류의 책들을 구입하고 보게 되었으며 강사님들이 추천해주시는 책들은 꼭 찾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다. 하나를 알게 되니 더 많은걸 알고 싶어져 요즘은 독서교육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대학원에 응시할지 합격하게 되어 입학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우리 과정을 수료한 뒤 미쳐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길들이 열리는 듯하다. 우선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자격증 따는데 매진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는 학생을 생각하고 개개인의 역량에 맞는 내용과 흥미를 잃지 않도록 조력자가 되어야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깨우는 사람이다. 나만의 개성을 노하우를 발휘해 좋은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가 될 것이다!
 
 
지혜로운 이의 삶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생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도 알고,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 <잡보장경> 중에서.
27 꿈을 갖는 다는 것은 - 입선 88기 조미라 1,983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대뜸 접수부터 하고 말았다.
나이라는 걸림돌이 스스로도 두려워서....
이십년도 훨씬 넘어서 새삼스레 책가방을 들었다. 대학 간 아들놈이 필통이며
공책이며를 사주며 파이팅을 보내 주었지만 젊은 사람들 틈에서 위축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나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반장이라는 타이틀을(나는 닉네임이라 생각했다.)얻은 덕분에 조금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워 질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떼어 놓고 공부하러 오는 젊은 친구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시기적절할 때 배울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나씩 ,둘씩....
가슴속에 뭔가 남기 시작하면서 ‘아! 나도 늦진 않은 거구나. 지금이라도 독지사가 있다는 걸 알고 또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우리를 몰랐다면 오랜 직장 생활에서 물러난 무료함에 다른 나이 먹는 아줌마들처럼 좋은 음식 찾아 먹으러 다니고, 모여서 다른 사람 험담하면서 인생을 소비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처럼 한우리를 만나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 온 것을 확신 했고 또, 그로 인해 꿈을 갖게 되었다.
한우리에서 얻은 귀한 보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서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나, 외국 근로자의 어린이나, 소외된 계층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일에 나눠주고 보태주는데 쓸 것 이다.
언젠가 어느 중 범죄자가 “누가 한 번이라도 내말에 귀 기울여 줬으면, 누가 한번이라도 날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줬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겁니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또 나타나지 않기 위해 내 주위의 소외된 어린이들이 따뜻한 가슴을 갖고 긍정적으로 자라나 또 누군가를 위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음에 내가 한 몫을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지만 그 숫자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이다.
적당히 포기 하는 게 쉬운 나이에
새로운 꿈의 첫발을 딛게 해준 한우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26 내 미래가 되어줄 한우리 - 입선 88기 이보람 1,606 내용 보기 내용 닫기
작년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친구로부터 독서지도사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독서지도사 과정을 들었고 현재는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독서지도사를 하면 될 것 같다고 좋아했다. 독서지도사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에서 그것에 대한 대강의 이미지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도 남았다. 그 때 나는 1년 전 대학교 국문학과에 편입해서 다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며 자격증 준비를 하기 위해 휴학을 결심한 상태였다. 내가 생각해 둔 자격증은 토익이며 한자능력시험, 한국어시험 등 이력서에만 잔뜩 쓸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한다는 독서지도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하면 되겠다!’하는 생각에 그 때부터 독서지도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만 몰랐던 것일 뿐 좋은 직업으로 자리잡아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성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하기 위해 항상 나의 조언자가 되어 주시는 고모와 함께 상의를 했고 교육을 받을 곳을 함께 찾던 중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다른 데에 비해 교육 과정이 다양하고 착실한 한우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2008년 늦더위가 한창 남아있던 9월 한우리 독서지도사 88기가 되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이 해소되는 첫 번째 달이었다. 특히 학교에서처럼 여러 과목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라는 틀 안에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해서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번 88기 독서지도사 과정은 기간이 꽤 단축된 4개월 과정이었다. 이것은 25살이라는 대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휴학을 결정하고 선택한 나에게는 부담을 덜어주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짧아진 기간만큼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지식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런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시간마다 여러분의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도 대부분 한우리 독서지도사 출신의 선생님들임을 알 수 있었고 같은 경험이 있는 선배님으로서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더불어 그 분들이 하시는 일에 큰 열의를 보여주셔서 독서지도사에 대해 더 많은 긍정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모든 선생님들이 책을 좋아하여 직업을 삼을 만큼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과 책을 통해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만큼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보며 이 직업에 대한 행복감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독서지도사에 대해 알아가며 수업을 듣는 한편 수업 과정 중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있는 감상문 과제는 다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아르바이트와 다른 자격증 공부로 채우고 있는 와중에 받은 감상문 과제는 쓸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달갑지 않았고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을 다시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정도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며 감상문에 담을 내용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고심하여 쓴 첫 번째 첨삭에서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날의 기쁨을 쓰지 않던 일기에 한 페이지 가득 담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계속 되는 과제에서 감상문을 쓰고 첨삭을 받는데 흥미가 생겼고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독서지도사가 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새 4개월의 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정말 빨랐던 시간의 결과임을 금색의 수료증을 받는 것으로 실감했다. 처음의 설렘은 잊은 지 오래 되었지만 다른 느낌의 설렘과 망설임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독지사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을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독서지도사를 선택했고 책이라는 것에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알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고민으로 가득 찼던 대학교 4학년 휴학의 끝자락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한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5 책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된 어느 사서이야기 - 입선 88기 야간반 조민지 1,520 내용 보기 내용 닫기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 하면서 많은 이용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끊임없는 다양한(?) 요구에 체계적인 독서지도사과정을 수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일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자꾸만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치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한사람의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는 것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텐데... 내 아이에게 책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려면 준비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한우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때부터 익히 들어서 한우리의 인지도는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수강신청 클릭!~ 그렇게 나의 긴 4개월 ‘독서지도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야근에 회식에 각종 행사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수료 후 지금은 이 후기를 쓰면서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

한우리 교육과정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매우 체계적으로 수업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강사님들도 한우리 교육과정 출신 분들이라 그야말로 선배 같은 친근감에 더 편하게 교육에 임할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중요도 높아 보이는 강좌는(어디까지나 주관적이긴 하지만) 수업 빈도를 더 많이 배분하였으면 하는 점이다. 암기식 개론 수업은 교재로 대체하고, 실질적인 교육이었던 000강사님의 그 파워풀하고 열정적인 강의는 시간 분배를 조금 더 해도 될 듯 한데라는 아쉬움?
10년 전 한우리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강단에까지 서 계신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니 열심히 해서 나도 저렇게 당당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차시를 거듭할수록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훗날 준비된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조금 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시작한 과정이었지만 더 큰 꿈을 꾸어 본다. 꿈은 아무리 커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하니 우선은 크게 꾸어 보리라. 도서관쟁이다 보니 직업병에 의해 책만 보면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데 독서지도사과정을 공부하고부터는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들만 보면 붙잡고 앉아 책을 같이 읽고, 독서지도를 해 보고 싶어진다.

독서지도사과정을 듣기 전의 개념과 지금 수료 후의 개념 정립이 달라졌다. 단순히 책만 바르게 읽도록 지도해 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경험(간접, 직접)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읽었던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김은하 저, 현암사 펴냄)’에서 보았던 구절이 떠오른다. ‘독서지도사는 아이와 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사람이다. 독서지도사의 역할은 특기 교육 교사라기보다는 상담자에 가깝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을 끊임없이 검토하여 더 좋은 자료를 찾아내야 하고, 그 정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독서지도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부담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 사실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난 이미 수료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시험에 합격해서 지도교사 입문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독서지도사로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아이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애정 어리 관심을 기울이며,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의논 상대가 바로 나, 독서지도사 선생님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후기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