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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지도사 교육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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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행복한 독서지도사 3 인천연수지부 표선실 1,671 내용 보기 내용 닫기
- 학부모

부모는 내 아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공부하고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바람이라면 좀 더 찾기 쉽고 가까운 곳에 성인교육에 대한 강좌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들은 이웃에 같은 학부모와 하소연식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이들을 많이 지도하다 보면 아이의 문제가 곧 부모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나이가 40세가 되면 지식의 평준화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살림을 꾸리며 자신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최고 학력을 가진 주부들도 단순화되어서 지식의 평준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들도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었는데 옛날에 받았던 교육만으로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고정관념에 가둘 뿐 아니라 성숙한 삶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머니 독서모임은 이런 고민 끝에 만든 모임이다. 한우리 교재 <독서와 논술1> 중학생용을 가지고 독서활동을 하였다. <독서논술 1>은 교과와 연결된 단편 소설이 들어 있는데 어머니들의 정서에 잘 맞고 필독서도 읽기에 적절하여서 같이 읽고 토의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어머니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분들과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연결이 되어 만나고 있다.

학부모 모의수업
한우리에 다니는 자기 아이의 필독서를 읽고 <생각하는 나무>로 아이들과 똑같이 해 보는 수업이다. 모의 수업을 통해서 내 아이가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지를 알게 되고 토의할 때에도 손을 번쩍번쩍 들지 못하는 사정도 알게 된다. 그리고 글도 직접 써 보게 되면 독서감상문 한 편 쓰는 것의 어려움도 알게 되어 독서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업 후에는 평소 자녀지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여러 가지 좋은 정보를 공유한다. 모의수업을 마치고 학부모 중에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기도 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권해달라며 책을 빌려 간다. 그리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학부모 모의 수업이나 간담회에 참여하신 학부모는 독서교육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꾸준하게 독서교육에 동참하거나 주위의 분들에게 한우리 독서교육에 대해 권하고 자랑하는 홍보대사 역할도 한다. 그 외에도 학부모와 관련된 여러 가지 행사들을 하는데 자녀지도와 독서교육계 강사의 강연회를 자주 열기도 한다. 독서클럽 회원 모집을 할 때 아파트 단지나 거리에서 판촉활동을 하는 것이 홍보하는 데에 빠른 효과를 보는 반면에 독서강연회는 강의를 알리고 준비하는 사전 작업이 길고 복잡하지만 두 시간 정도의 강의로 한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바꾸기 때문에 확실하고 장기적인 독서운동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독서신문과 추천도서 목록을 나누어 독서 저변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열기도 한다. 학부모 강연회는 연 2회 정도, 독서캠페인은 년 6회 정도 하고 있다.


- 생각하는 나무를 더 재미있게

한우리 필독서와 견학
한우리 독서지도사 과정을 시작하고 한우리 필독서와 <생각하는 나무>로 수업을 하자 체계적인 교재로 독서수업을 받게 되었다며 학부형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은 한우리 연구원이 선정한 도서를 월 2권씩 받고(문학, 비문학으로 구별된 장르별 도서와 테마를 중심으로 한 도서) 책을 읽고, 토의를 하고, 주제별 독서활동을 하면서 책읽기를 즐거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책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또 다른 책을 찾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서점에도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자주 가지 않는 편이어서 아이들은 도서관이 무얼 하는 곳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많았다. 우선 도서관에 가보지 않은 아이들을 20명 정도 추려서 도서관 견학을 하기로 하였다. 추리다보니 모두 1, 2학년의 아이들이다. 도서관 가는 길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버스비와 짜장면(국어사전에는‘자장면’ 이라고 해야 맞춤법에 맞는다지만 난 그냥 짜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한 그릇 사먹을 돈을 가져오도록 해서 줄을 세워 버스를 타고 갔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처음 보았고 또 그 많은 책 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을 찾고는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 했다. 아이들에게 그 때의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은 지금에야 말이지만 아이들은 좋았겠지만 나는 줄에서 멀어져서 자꾸 빠져나가는 아이를 잡으랴,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아이들 동전을 세어주기도 바빴다. 더 끔찍했던 건 1, 2학년 아이들이 대부분 짜장면을 스스로 비벼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날 나는 짜장면 20그릇을 비볐다.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최대한 재미있게, 실제로 볼 수 있게,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게 그리고 그것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필독서가 어떻게 선정되는가에 따라 월간 행사가 잡히고 계획이 정해진다.
한우리 필독서 중에 예술가‘백남준’에 대한 전기를 가지고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접했던 위인전과는 달리 현대에 살아 있는 예술인이라서 더욱 친근했고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하는 나무>로 토의를 했는데 교재 안에는 백남준의 작품들이 사진으로 많이 나와 있었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보다는 그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잡아서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하나씩을 정해서 사진을 붙이고 그에 대한 작품 설명으로 도표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자료를 찾게 해서 한 작품만이라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 백남준 전시회에 가기로 하였다. 전세버스를 빌려서 전시회를 보고 초등학교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소리 예술, 행위예술, 텔레비전을 비롯한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들로 표현한 메시지를 느껴보려고 노력하였다.
앞에서 ‘마침 백남준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라고 썼지만 한우리에서 필독서를 선정할 때 전시회의 일정을 미리 알고 어린이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전시장의 위치와 전화번호까지 알려준 것이 참 고맙다.

우리 전통 악기와 관련된 필독서를 공부하다가 서양악기와 우리 나라 악기 이름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우리 나라 악기로 현대 음악을 연주한 테이프를 구해서 악기의 이름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서로 비슷한 소리를 구분해보기도 하는 수업이었다. 다행이 테이프 안내서에 악기와 연주한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양 악기는 종류도 많고 악기 이름도 외우기도 어렵고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서양 악기가 궁금해지면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단 몇 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악기점을 기웃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악기점에 들어갔다. 내 생각으로는 악기점 주인은 악기에 대해 많이 알 것이고 악기를 다룰 줄 아니까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악기점 견학을 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악기를 살 것 같지도 않은 아줌마가 독서가 어쩌고 악기점 견학이 어쩌고 하니까 말대꾸도 하지 않아서 혼자 머쓱해져서 악기점을 나왔다. 며칠을 보내다가 예술회관에서 청소년을 위한 인천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이들과 교향악단 연주회에 가기로 하였다. 전화 예약을 하는데 유치부 어린이부터 중학생까지 간다고 하니까 주최측에서는 난감해 한다. 복장도 갖추고 떠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시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 석 대도 제공받아 연주회에 가게 되었다.
견학을 가기 전에는 사전에 공부를 치밀하게 시켜야 떠들지도 않고 견학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연주회에 가기 2주 전부터 오케스트라의 위치와 악기 이름을 공부하고 공연장 예절이나 복장을 가르쳐 주었다. 가장 깨끗한 신발과 (슬리퍼는 절대 안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나는 옷을 입고 머리를 곱게 빗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안되고 언제 박수를 쳐야 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그 날은 미용실에서 머리도 손질하고 화장까지 한 공주들, 멋지게 2대 8로 기름발라 빗은 왕자들로 가득찬 멋진 날이었다. 독서지도를 하면서 실제로 만지고 보고 느끼게 하려고 갔던 곳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음에 나오는 활동들도 모두 책과 연계된 확산적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식물 사전 만들기
동물, 식물에 대한 필독서(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를 할 경우에는 ‘동물사전 만들기’를 할 수 있다. 각자 다른 동물에 대해 집중조사를 한다. 그리고 조사한 대상의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려서 붙이고 조사한 내용을 적고 정성껏 꾸민 후에 인원수에 맞게 복사하여 한 편씩 모은 것을 편집해서 묶으면 동물사전이 된다. 동시집, 요리책, 놀이사전, 사전처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도 이런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

23 아름다운 도전 1 - 독서지도사가 되다 여주 문화원 김양숙 2,774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나는 늘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다.
때로는 짝사랑으로 시작해서 짝사랑으로 끝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관심 하나로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사랑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오늘은 2~3년 간 혼란과 격정의 사춘기를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고민해온
중2 여학생으로부터 예쁘고 하얀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으로 받았다.
“제가 힘들 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구요,
가끔씩은 선생님도 힘드실 때 저를 찾아주세요. 저도 이젠 많이 컸다구요~ . ”
난 아이들이 저마다 겨드랑이에 하나씩 날개를 달고
내 곁을 떠나 날아오를 때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먼 훗날 그들이 고단한 항해 끝에 지쳐 돌아오면 편히 쉬었다
다시 떠날 수 있도록 옛 친구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다.
독서지도사 수기공모에 참여하기를 적극 권해 주신
한우리의 이현기 선생님과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지난 10년 간 내 곁에서 힘찬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착한 남편과
두 아이들과 이 영광을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


1. 독서지도사가 되다

가을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우리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차가운 가을 바람에 실려서 빨라진다. 한우리독서문화원에서 집으로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째다. 2년 남짓 집에서 독서 지도를 한 것까지 치면 독서 지도를 시작한지 올해로 9년째 접어든다. 그 긴 세월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오로지 독서지도사의 길을 걸어온 나를 되돌아 보면서 나 스스로도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제2의 인생기를 찾은 즐거움도 있지만 독서지도사로 일한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 교육이 저절로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일석이조’라는 말은 내 인생에 아주 적절히 사용되었다. 독서 지도를 통해 중년에 새로운 나의 미래를 찾았고 또한 독서 지도로 아이들의 미래를 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살다가, 큰아이 3살 때인 1988년에 남편의 직장 관계로 여주로 왔다.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지방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던 1994년, 우연히 한우리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내 인생의 모험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막 입학했을 때여서 난 엄마로서 이제부터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은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평생 줄 수 있는 책을 아이에게 연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독서 지도라는 것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여서 지방의 작은 읍에는 아무리 찾아도 독서 지도를 하는 곳이 없었다. 난 지방의 열악한 교육 환경만 탓하고 있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내가 배워서 우리 아이를 가르치기로 결심을 했다.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서울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여주에 모셔다 놓는 일이었다. 아직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서울로 다니면서 공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타지에서 아이들을 이웃이나 학원에만 방치하는 것은 마음이 안 놓였기 때문에 친정 어머님께 떼를 쓰다시피 해서 어렵게 여주로 모셔왔다. 그래서 우리 집은 1층에, 친정 어머님 집은 같은 건물 3층에 마련했다. 함께 한 집에서 지낼 수도 있었지만 시집 간 딸집에 사시다가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해 하실까 봐 집만 따로 마련하고 친정 어머님은 눈만 뜨시면 우리 집으로 늘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셨다.

아이들 문제가 해결된 후부터 난 순풍에 돛단 듯이 본격적으로 역삼동에 있는 한우리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리상 문제가 있어서 통신반으로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현장감 있는 수업을 받기 위해서 일주일에 2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2번씩 갈아타면서 한우리로 직접 다녔다. 매주 써 내야 하는 독후감과 사설 숙제에 치이면서도 6개월 내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지냈다. 구성원끼리 서로 격려해 주고 서로 도와 주면서 그렇게 6개월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난 무사히 한우리 9기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우리독서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게 확연하게 보일 것 같았던 독서지도사의 길이었는데 졸업이 다가오면서 모든 것이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 독서 지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땐 한우리에서 공부하고 새롭게 아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만 했는데 조금씩 알아가면서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독서지도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 모습에 스스로 불안해졌고, 하나씩 배울 때마다 난 한번씩 쑤셔놓은 케이크처럼 볼상 사납게 변해갔다. 점점 모든 게 제대로 정리도 안 되고 그저 불안하고 힘들기만 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독서지도사 과정을 시작했을 때보다 졸업할 때 오히려 내 위치는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이상하게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졸업과 동시에 조금이나마 있던 자신감마저 없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막연히 부럽기만 하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못할 뿐 구체적으로 시작할 용기도 나지 않고 그저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이런 나의 나약함에 나 스스로 화도 나고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로 하소연할 수도 없어서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데 한우리 연구원 모집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그래서 난 자격증을 따기도 전에 졸업을 하자마자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기 위해 박철원 회장님(그 당시는 본부장님)소속 연구원 모집에 응시한 후 면접을 통해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결국 6개월이면 끝날 것 같았던 서울 여정은 6개월이 지난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용기를 내어서 큰아이 친구들을 포함해 5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독서 지도를 시작할 때의 어려움은 그때 함께 했던 다른 연구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으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현재 한우리 강의를 맡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 때 함께 연구원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때는 그 사람들의 열의에 자극 받아 안주하려는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었다.

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서울로 원정 갔었는데 매번 가는 장소가 달랐다. 역삼동, 선릉, 잠실, 합정동 등 독서 지도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강의하는 곳이면 서울의 어느 곳이든지 다 쫓아다녔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면 마치 엄마 제비가 새끼 제비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이 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지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때 나의 억척 덕분에 지금 나에겐 꽤 많은 수료증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도 한우리독서문화원의 내 자리 뒷벽을 차지하고 있는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마인드맵 지도사, NIE 지도사, Reading Specialist(독서문제전문가), 영어독서지도사, 독서교육학 석사 학위증이 그것이다. 어쩌다 그것들에 눈이 머물러 살펴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숨 가쁘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그때의 열정이 지금도 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난 늘 부족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늘 배고프고 아쉽고 허전했다. 그래서 너무나 불안했다. 그것이 나를 끝없이 배움터로 몰아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 아이만 가르치고자 했을 때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집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이젠 부모의 역할로만, 단순히 주부의 부업으로만 여길 수 없는 책임감이 날 사로잡았다. 무료라면 몰라도 돈을 받고 가르칠 때는 돈을 투자한 것만큼 내게 맡겨진 아이에게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그런 강박감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주변에서 피아노나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만 보더라도 대개 전공자들로서 보통 5년 이상은 관련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한우리에서 6개월 배운 독서 지도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엔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가르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하고 오전엔 내가 공부하러 다니고 오후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늘 공부하는 자세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차츰 독서 지도에 관심 있었던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수업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맡은 수업이 늘어나자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맞춰서 서울에서 여주로 돌아오기가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서 내 차도 장만하고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하루가 멀다하고 질주하면서 정신 없이 서울과 여주를 오가면서 지냈다.

내가 그렇게 정신 없이 나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아이들의 이해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친정 어머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당시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작은 아이는 5세였기 때문에 사실 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일하는 데 점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길어야 1년 정도 신세를 지려고 연로하신 친정 어머님을 서울에서 여주로 모셔왔었는데 공부에 대한 욕심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친정 어머님을 3년 가까이 여주에 붙들어 놓게 되었다. 나중에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자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 쓰느라고 정작 우리 집 아이들을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모순이 날 힘들게 할 때가 많았는데 친정 어머님 덕분에 겨우 조금이나마 정신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때 친정 어머님의 희생에 보답하고픈 마음에서 더 열심히 그 힘든 과정을 씩씩하게 헤쳐 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 하나 어렵게 배운 독서 지도에 관한 이론들을 내가 직접 독서 지도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독서의 불모지였던 여주에 독서 지도의 뿌리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22 아름다운 도전 2 - 변화하는 학부모들 여주 문화원 김양숙 1,511 내용 보기 내용 닫기
2. 변화하는 학부모들

처음에는 ‘독서는 단순한 글쓰기’ 정도로만 인식했던 학부모들이 지금처럼 독서를 학습의 기초로 인식하고 한우리로 찾아오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한우리에서 독서지도를 통해 학습의 기초를 닦게 한 다음 본격적인 학습으로 들어가게 하려는 학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처음에 한우리를 찾아온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일기나 독후감을 잘 쓰게 해달라거나, 교내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상타게 해달라든가, 동화 구연 대회용 글을 써 달라든가. 웅변 원고를 써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독서 지도 목표를 학습의 기초를 닦는 것으로 확실히 정해놓고 그것을 학부모들에게 인식시켜 드리기 시작했다. 학부모와 상담할 때마다 학습의 기초인 독서(독서 방법과 독서 태도)를 통해서 독서 흥미를 높이고, 또 토론을 통해 생각을 넓히고,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표현해내서 학습 효과를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나의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내 주변에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학습지를 시켰거나 웅변 학원에 보냈던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미 그렇게 도움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난 나의 독서 지도 목표와 독서 지도 방향을 확실히 밝히고 난 후, 학부모들 스스로 선택하시도록 했다. 처음엔 내 교육 방법에 반신반의 하시던 학부모들께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 능력과 함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자 점점 독서가 학습의 기초라는 나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읽기 능력이 다른 학습 능력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와 학부모는 함께 너무나 기뻐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의 상태와 수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어찌될 수 있으니 뭘 조심하고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처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학부모와 함께 아이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진지한 상담이 오고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님들이 느끼기엔 학교는 학교대로 선생님이 어려워서 못 가고, 학원은 학원대로 성적 향상에만 신경 쓰느라 학과별 성적 상담은 있을지언정 아이들 개개인의 인성 파악을 통한 개별 상담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우리 집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부모로서 정말 아쉽고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를 찾는 학부모님과 정보를 공유하고 내게 맡겨진 아이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생긴다는 말처럼 난 고여 있는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 여주에서 서울로 다양한 공부를 배우러 다니면서 점점 나의 전문 영역을 넓혀갔다. 그 때 솔직히 힘은 무척 들었지만 그 덕분에 많은 분야에서 최신 정보를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난 단순한 아이들 글쓰기나 독서 지도뿐만이 아니라 부족하나마 독서 클리닉에도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개개인의 상담에 대한 어머님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교육 정보가 부족한 지방이어서 나의 노력은 더욱 환영받을 수 있었다. 정확한 진단과 평가 후에 계속적인 지도와 교육이 이루어지면 못 고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내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아이의 변화에 무관심한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남들 따라 학원에 보내면 저절로 아이가 변하겠지 싶은 마음에 무조건 보내놓고 방관하는 학부모들… . 아니면 너무 바빠서 자식을 돌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들, 특히 밤늦도록 장사를 하는 부모님일 경우에는 내가 아무리 정확한 진단을 하고 처치를 해도 아이들이 날 만났다가 집에만 가면 다시 흐트러져서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유난히 장사하는 분이 많은 이곳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독서를 통해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고 아이들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게 하는 것이 일하는 부모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주 현실을 인식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진지한 상담이 시작되면서 학부모들은 차츰 독서와 학습의 중요도를 같은 무게로 느끼기 시작했다.
21 아름다운 도전 3 - 진정한 스승되기 여주 문화원 김양숙 1,269 내용 보기 내용 닫기
3. 진정한 스승되기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을 오로지 독서 지도와 학부모 상담에 파묻혀 지냈다. 나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한우리는 잘 운영되었고 어느새 대기하는 학생까지 생겨났다. 어느 정도 한우리가 안정권에 들어오자 지금까지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급하게 뛰어다녔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오랫동안 쌓아 온 독서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수업의 빈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어줍지 않게 나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격을 묻는 것이었다. 비록 사교육이긴 하지만 교육 현장에 있으니만큼 공교육, 사교육을 불문하고 학생들을 교육시키려면 나 스스로 진정한 스승이 되어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체계적이고 학구적인 독서 이론 학습의 필요성이 느껴진 것이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독서교육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때 나는 3년 동안 고생하셨던 친정 어머님을 서울로 이미 보내드린 상태였고, 우리 가족끼리 그때그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본격적인 홀로서기 생활을 2년째 하고 있었다. 난 급한 마음에 당장 가족 회의부터 했다. 친정어머니가 안 계셨기 때문에 내가 뭘 시작하려면 이젠 가족의 절대적인 협조와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로 공부하러 다녔던 것은 오전 중에 이루어지는 일이었지만 대학원 공부는 오후에 갔다가 거의 한밤중에 오는 일이라서 가정주부로서 한밤중까지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도 내 계획과 결심을 듣고는 나보다 남편과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를 격려해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특히 남편은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거라면서 모든 것을 다 도와줄 테니 시작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마침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아이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서 난 41세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처음 99학번을 받고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의 그 감격은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은 중년인 내 나이를 멈추게 했고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사로서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실전이나 현장에서 배우지 못한 교육 이론을 이제야 제대로 하나씩 배워 나간다는 안도감이었다. 강의 시간만 되면 나이 어린 강사들부터 연로하신 교수님들까지 거침없이 만나면서 심도 있는 토의를 하고 새벽 1시나 2시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하게도 난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일주일에 2번씩 여주에서 역곡으로 왕복 5시간을 소비하고 다녔지만 대학원에서 최신의 독서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대학원 생활은 내게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 교재의 대부분이 우리나라 책보다는 영어 원서가 많아서 꼬부랑 글씨와 싸움해가면서 리포트 쓰느라고 컴퓨터 앞에서 밤새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한밤에 아이들의 밤 인사를 받고 과제 작성을 하다 보면 날이 밝아져서 컴퓨터 앞에서 아침 인사까지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밤을 꼬박 새는 일이 반복되자 나중엔 피부도 거칠어지고 건강도 나빠지고 특히 눈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 도수도 올려 써야 했지만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내 열정이 난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난 끝없이 도전을 했고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해 무조건 앞만 보고 가던 2년 반의 힘들었던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2001년 9월에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무모할 것 같았던 내 계획이었는데 마침내 해내고 얻은 것은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그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이론들을 모두 현장에 활용해 볼 수는 없겠지만 나이 들어 스스로 내가 필요해서 했던 공부라서 그런지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지식들이었고 모든 게 너무 소중했다.

난 졸업논문으로 읽기부진아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지방에 살면서 독서 지도를 해보니 한글을 정확하게 다 떼지 못해서 생긴 읽기부진아에 대한 문제가 의외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대도시는 학습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그런지 입학 전에 미리 한글을 완벽하게 다 떼고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지방으로 갈수록 한글을 다 떼지 못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읽기부진아의 경우 대개 1학년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1학년 학급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부진아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입학하자마자 초기에 읽기부진아들을 고쳐야 되는데 읽기부진아 대부분이 학습지를 통한 단순한 자모의 반복이나 내용 없는 낱말들의 반복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난 그림책을 통해서 한글을 깨우치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1학년 읽기부진아를 위한 조기 교정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는데 부족한 논문이었지만 졸업논문을 쓰면서 읽기부진아에 대한 공부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성과였다. 또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초?중?고 교사들을 통해 학교 밖에서만 보아왔던 획일화된 공교육에 대한 나의 편견도 바꿀 수 있었으며, 공교육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긍정적인 사고로 공교육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자 공교육자와 사교육자는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반자라는 긍지와 남다른 각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난 내가 아니어도 발전할 수 있는 아이들보다 내가 꼭 필요한 아이를 만나서 제대로 교육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되고 싶었다. 교육이란 글자의 본래 문자적 의미를 보더라도 가르쳐서 키우는 것인데 만약 교사가 가르치기만 하고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교사도 단순한 기능인에 불과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생활은 그동안 어줍지 않게 교사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나를 반성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많은 교육 이론들을 다시 공부 하면서 끝없는 희생과 봉사가 곧 교사의 신성한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 아름다운 도전 4 -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여주 문화원 김양숙 1,410 내용 보기 내용 닫기
4.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지금까지 독서 지도를 하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기억은 졸업논문을 위한 실험 수업을 했었던 2000년 겨울방학 때였다. 1학년 읽기부진아 10명을 초등학교에서 추천 받아 1달 간 매일 무료로 한우리에서 독서 지도를 하고 있었다. 모이게 된 대부분의 아이들은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두었거나, 결손가정 아니면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그 중 한 아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군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금을 받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그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할머니와 통화했을 때 아이의 부족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서 무료 독서지도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10명의 1학년 아이들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던 설레던 겨울,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다. 그 아이가 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훔치다가 그만 나한테 들키고 만 것이다. 그것도 내 돈을 훔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세번째나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선생님이 수업 중인 교실 바로 옆에서 가방을 열고 지갑을 열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을 훔쳤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때 금액이 무려 8만 원이나 되어서 더욱 놀랐다. 내 지갑의 만 원짜리를 모두 꺼내려다가 내가 갑자기 교실에서 나오자 아이도 깜짝 놀라서 그만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호기심에 1장 정도는 몰라도 배짱 좋게 그 자그마한 손으로 8장을 덥석 집어들었을 그 순간을 생각하니 난 너무 기가 막혔다. 그동안 한우리를 운영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늘 믿고 지냈기 때문에 난 모든 것을 다 자유로운 상태로 놔둔 채 수업을 해왔었다. 뭘 잃어 버려도 그게 책이겠거니 생각했고, 읽고 싶어서 가져간 것이니까 다시 가져오겠지 하면서 마음 편히 생각해왔다. 단 한 순간도 한우리에서 돈을 잃어 버릴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때의 충격 때문에 그 후로는 책상 서랍도 잠그고 내 가방도 의자에 그냥 올려놓지 않고 서랍 속에 넣고 잠근다. 책상 열쇠를 잠글 때마다 마치 내가 아이들을 믿지 못해 아이들과 나를 단절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생긴 후 그 아이의 집에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아이의 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몹시 놀라시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너무 죄송하다고만 계속 말씀하셨다. 다음날 아침, 한우리에 온 아이의 콧잔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나 있었는데 물어보니까 할머니가 주전자 뚜껑으로 때렸다고 했다. 나 때문에 맞은 것 같아서, 아이의 상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처음에 내가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인 한글도 잘 모르고 책읽기도 무척 싫어하였다. 또 할머니가 자주 아프신데 그럴 땐 할머니가 밥도 안 주셔서 그 아인 자주 굶는다고 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다른 아이들보다 그 아이에게 신경이 더 쓰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 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안아주고 좋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나와 많이 친해지자 그 아이는 나에게 잘 웃어주었고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해주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 아인 나에게 독서 수업 끝나고 집에 가지 않고 한우리에서 책을 더 읽고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아이에게 독서 지도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책읽기를 싫어하던 그 아이가 스스로 남아서 책을 읽겠다는 말에 나 스스로 감동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나의 어리숙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수업 후 집에 가지 않고 한우리에 남은 것은 책을 읽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다음 수업 시간을 위해 교실로 들어가길 기다린 것이었다. 그래야 마음놓고 지갑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우리에 남아서 책읽기를 내게 허락 받았고 그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나를 쳐다보면서 나의 칭찬을 계속 받아온 것이었다.

처음에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다. 어떻게 순진하고 어린 1학년 아이 마음 속에 그런 영악한 마음이 들어있을까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내 지갑을 3번이나 뒤졌다는 것임을 알고는 정말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고 알면 알수록 그 아이에 대해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진실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느껴보는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안다 해도 그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혀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회의까지 밀려왔다. 내가 교사로서 어디까지 그 아이를 감싸주고 책임지고 품어줘야 하는 건지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끝까지 포용할 힘이 없는 비겁한 내 자신을 보고 더럭 화도 났고 겁도 났다. 그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독서 지도를 통해 보듬어주려고 했던 교사로서의 내 행동이 다 가식이었던 것 같아서 갑자기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자신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스스럼없이 믿고 지냈던 아이들이 불현듯 의심스러워지고 내 마음도 이미 아이들에게서 멀리 떠나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조차 왠지 날 비웃는 것 같았고 난 교사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조절력도 상실되어 가는 것 같았다. 논문을 위해 준비된 학생들이고 수업이었지만 보람보다는 내가 오히려 교사로서의 자질을 최종적으로 실험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도둑 사건이 생긴 날부터 실험 수업을 끝마칠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아이는 실험 수업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꾸준하게 다녀주었다. 난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예전처럼 대해지지가 않아서 괴로워했지만 그 아이는 매일 매일 나와서 수업 시간에도 계속 날 보며 웃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대했다. 그 때 그 순간들은 나에게는 차라리 너무 힘든 고문의 시간들이었다. 솔직히 난 하루라도 빨리 실험 수업을 끝내고 그 사건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겐 그 사건이 잊혀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나마 아이들로부터 도망치려했던 교사로서의 불성실함이 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려왔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지난 2000년 겨울방학은 지금 생각해도 내게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는 순간은 내겐 너무나 불행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고통스러웠던 긴 겨울방학이 끝난 2001년 어느 봄 날, 그 아이는 씩씩한 2학년이 되어서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봄바람처럼 상큼하게 나를 찾아왔다. 한우리에 책을 보러 온 거라면서 그 때 같이 공부했던 다른 아이들 2명과 함께 나에게 발랄하게 인사를 했다. 난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그 아이를 보자마자 두 팔 벌려 덥석 안아서 번쩍 치켜들었다. 자그마한 몸집이 내 가슴에 안기는 순간 난 그동안의 마음의 빚을 덜고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마치 지루하고 긴 겨울이 끝나고 나에겐 그제서야 진짜 봄이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 그 일이 일어났을 땐 두려운 마음에 진심으로 안아주지 못했지만 나중에 찾아왔을 때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 처음에 마음으로부터 진실하게 그 아이를 품어주지 못하고 보냈던 것이 너무 미안했었는데 다행히도 그 아이가 다시 찾아와 난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내가 다정하게 반기면서 꼭 안아주자 그 아이도 너무 좋아하였다. 책이라고 하면 싫어서 도망 다니던 아이들이었는데 나랑 그림책 읽고 활동했던 경험들이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에 움츠러 들었던 교사로서의 자신감을 그 때 조금은 되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겐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특히 부모의 관심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해보는 사건이었다. 사랑이 결핍된 결손가정의 아이들과 한달 간 매일 독서 수업을 하면서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의 동심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가치관을 흔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난 이 일을 계기로 나에게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내 가정과 내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성실하게 지켜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른들과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어린 마음들을 독서 지도를 통해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독서지도사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19 아름다운 도전 5 - 가장 보람 있는 기억 여주 문화원 김양숙 1,265 내용 보기 내용 닫기
5. 가장 보람 있는 기억

작년 가을 이맘때가 생각난다. 그 때는 가을임을 느끼고 말고 할 사이도 없이 정신 없이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5학기를 2001년 9월에 마치자마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10월부터 중3짜리 큰아이의 고입 열풍이 시작되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목표가 확실한 아이라서 중학교 내내 전교 1, 2등을 다투면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고 특목고 입시 준비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중1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낙방하자 큰아이는 난생 처음으로 인생에서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막바지 시험 준비 기간인 중3 여름방학 때부터는 길어야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자면서 공부하느라고 너무나 힘들어했었는데, 그 모든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밀려온 것이었다. 난 그런 큰아이를 보면서 담담하게 입시 결과를 받아들이느라 침묵을 지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큰아이는 그 때부터 서서히 대단한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건 그동안 아무도 생각지 못한 유학이라는 결심이었다.

10월 어느 날 큰아인 내게 민사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서 허락해달라고 하였다. 갑작스런 큰아이의 유학 결정에 대해 남편은 중3때 유학 가는 것은 시기적으로 어중간해서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고, 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큰아이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보자고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큰아이의 상실감을 치유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사고보다 더 큰 인생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스스로 상실감을 치유하는 것이 최고일 것 같았다.

결국 큰아인 유학 결정을 내린 지 2개월 만인 작년 12월, 한국을 떠나 막내 외삼촌이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제외국인고등학교(ISKL)로 갔다. 미국에도 외삼촌이 있었지만 큰아이는 영어와 중국어를 다 배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말레이시아의 국제외국인고등학교를 택했다. 앞으로 경영학을 공부해서 CEO가 되는 것이 큰아이의 꿈이었는데 중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미국 대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은 큰아이가 결정을 했고 난 아이의 결정에 대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만 해주었다. 무모한 결정이라고 처음엔 극구 반대하던 남편도 아이의 결심이 워낙 확고하고 나도 곁에서 도우니까 나중엔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학에 관련된 실제적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주었다. 그렇게 큰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부랴부랴 중3때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졸업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훌쩍 한국을 떠나버렸다.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오자 큰아이가 전교 1등상을 받게 되었다면서 학교에서 졸업식에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큰아이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타국에서 정신 없이 공부하느라고 정작 본인의 졸업식장에는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큰아이 대신 내가 시상대에 올라가서 큰아이가 누릴 영광과 우렁찬 박수를 받고 내려왔다. 졸업식을 끝내고 큰아이 이름의 많은 상장과 상품을 받아들고 학교를 나서는데 갑자기 커다란 허전함이 나에게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유학이란 이름으로 큰아이는 자기 인생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에 엄마의 의연함으로 그 순간의 허전함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유학간 지 6개월이 지난 2002년 여름방학에 큰아이는 전과목 ‘All A’를 받아들고 한국으로 왔다. 공항에서 맞이한 아이는 8kg이나 살이 쪄있었고 노트북을 한 손에 든 모습이 제법 대학생 같이 늠름해 보였다. 유학 가기 전에는 입시 공부에 매달리느라, 미래를 고민하느라 몸도 삐쩍 마르고 지친 모습이었는데 유학 가서 테니스, 마라톤, 축구 등 운동을 통해 다져진 체격 때문인지 이젠 제법 듬직한 청년 같아 보였고 어느덧 홀로서기를 한 아들이 정말 대견해 보였다. 특목고 입시 실패에 대한 오기로 한국을 떠난 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효과인 것 같아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큰아이의 화려한 귀국을 축하해주었다.

지금도 큰아이를 생각하면‘내가 독서지도사가 되길 정말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매주 독서 토론을 통해서 만나기 때문에 아들과 엄마의 사이는 늘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큰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속셈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컴퓨터(또는 영어)와 독서 지도만 배웠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넉넉해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주 적고 늘 여유로웠다. 내가 바쁜 탓에 속셈 학원이라도 보내서 부족한 학습을 보충시키고 싶었지만 워낙 아이가 완강하게 학원을 거부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학교 공부를 대신해서 독서만은 철저히 시켰다. 그대신 자기 학년 반이나 위 학년 반에 넣어서 독서 수업을 자유자재로 시켰더니 독서력이 상당히 높아져서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생과 함께 독서 수업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부터 본격적인 학교 과목들을 공부시켰더니 놀랍게도 이해력이 높아서 그런지 공부하는 대로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그 결과 중학교 내내 장학금으로 다녔고 결국 큰아이는 중학교 졸업할 때 개교 이래 최고의 내신 점수(200점 만점에 199.33)로 전교1등이라는 기대 이상의 선물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들은 학원 다니느라 힘든 시간에 우리 집 큰아이가 집에서 뒹굴면서 책만 읽어대자 주변 사람들은 엄마인 나를 흉봤었다. 엄마가 아이 공부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독서만 시키고 있으며 자기가 하는 일에만 신경 쓴다면서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우리 집 큰아이의 독서를 통한 교육적 성과를 보고는 다들 너무나 놀랐다. 난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나도 대학원 입학을 해서 정신 없이 같이 바빴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내내 꾸준한 독서 훈련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힘이 이미 길러져 있었기 때문인지 학습 효과가 높게 나타났고 정신적인 강한 의지와 끈기가 우리 집 큰아이를 전교 1등으로 만들어준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서 지도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해왔던‘독서 능력이 곧 학습 능력’이란 나의 소리 없는 외침은 우리 아이를 통해서 낱낱이 증명이 되었고 난 그 덕분에 한우리의 호황(?)까지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큰아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께서 직접 당신 자녀들을 맡기시며 우리 아이처럼만 책을 읽고 생각하게 해달라고 하셨다. 힘든 특목고 입시 공부와 학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중3때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시다가 아이의 정신적 성숙이 바로 독서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았다. 교내 독후감 최우수상에, 외부 글짓기 대회상도 타고, 반에서는 실장이고, 선도 부원이면서 학교 임원에, 편집장까지 하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리 집 큰아이를 선생님들까지도 무척 부러워하셨다. 그 전에도 학부모들이 누구누구가 한우리에서 공부하더니 너무 달라졌다면서 우리 아이도 그렇게 변하게 해달라고 하실 때도 기분 좋았지만, 내 아이를 가르치셨던 학교 선생님들께서 당신 자녀들을 우리 집 큰아이처럼 해달라고 하실 때 느껴지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자 희열이었다. 그 순간 난 교사로서, 어머니로서 지금껏 내 역할을 잘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고, 오랜 시간 독서 지도에만 매달려 온 내 정열과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너무 행복했다.

어떻게 큰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다가 잘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난 우리 집 큰아이가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 할 때가 되어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을 때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할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런데 현재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하기도 전에 무엇이든 하도록 강요되고 있기 때문에 미처 에너지가 다 발휘되지 못한 채 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최고라든지 일류라든지 하는 그런 욕심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모험을 했는데 그 기간이 초등학교 6년 동안이었다고 말하면 많은 어머님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참을 수 있었느냐면서 날 이상한 듯 쳐다본다. 하지만 난 내 아이를 믿고 내 아이는 분명히 독서로 다져진 실력이어서 언젠가는 추진력을 가지고 스스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아이가 6학년이 되어도 학원도 가기 싫어하고 시험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문제집도 제대로 풀지 않을 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가 한우리 수업만 좋아하고 책만 잘 읽는다는 것만으로 내가 너무 맘 놓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걱정했지만 난 끝까지 우리 아이를 믿어 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중학교 들어가서 ‘독서 능력이 곧 학습 능력’이란 것을 증명해 준 우리 집 큰아이를 생각하면 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대해 언제나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은 유학 때문에 멀리 떠나 내 곁에 없지만 끝없는 도전과 큰 포부도 독서를 통해서 얻은 것이기에 난 독서지도사의 생활을 더욱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작은 아이도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호기심과 탐구력도 대단하다. 오빠처럼 속셈 학원에 다니길 싫어해서 지금껏 보내지 않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시작했던 독서 훈련 덕분에 독서력이 높아서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습 능력도 높다. 사춘기 딸을 갖고 있는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과 대화가 안 되어서 걱정투성인데 나는 나와 대화를 하길 너무나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딸이 있어서 즐겁다. 우리 딸아이는 엄마가 너무 편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랑은 무슨 이야기든지 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편해지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난 그 말처럼 듣기 좋은 말이 없다. 다른 집 아이들은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면 나 스스로 마음의 불안정해서 제대로 된 교육이 나오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행복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다른 집 아이들과 엄마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덜어주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18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 최우수상 90기 온라인 신은정 3,661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대학과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회사에서 설계엔지니어로 일하였다. 남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는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여성으로 독특한 일을 한다며 늘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런 시선이 싫지는 않았다. 내 나름대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참고 또 참으며 일구어낸 열매였으니까. 하지만 나의 회사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업무가 체 파악되기도 전에 나의 몫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별을 보고 출근하여 별을 보고 퇴근하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인간관계는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나의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대상 또한 찾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 알맹이가 쏙 빠진 껍데기,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사태가 그쯤 되자 나는 나를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내가 과연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 였던가. 나는 찾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독서 지도사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알아보던 중 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과정이 가장 역사가 깊고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 2007년 온라인 과정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잦은 출장과 바쁜 업무로 미수료의 결과를 얻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도전하고자 마음속에 늘 생각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 사이 2년 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고 그 동안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출산과 동시에 자연스레 휴가를 얻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육아휴직도 얻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몸이 어느 정도 추슬러 질쯤 나는 독서 지도사 과정에 재도전하였다. 정보교류가 쉽고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 오프라인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아이를 보며 공부해야 했기에 다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다. 2007년에 한번 도전해 본 기억으로 학습내용과 과제분량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떠올라 개강 첫날부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해야 했기에 1시간짜리 수업을 4시간에 걸쳐 듣기도 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계속 다음 강의가 듣고 싶어지고 점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각 과정마다 강사님들은 오랜 노하우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고 실감나는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감동적 이였던 것은 온라인 수업이라고 해서 강의 내용이 오래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전 차수의 오프라인 강의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 때문에 내용의 신선도가 살아있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또한 온라인 수업의 최대 장점은 자신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나같이 매주 정확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 유용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계속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 학습내용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업 중반정도가 흐를 무렵 ‘강사에게 이메일 보내기’라는 코너가 생성되어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바로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과 지역별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주신 것은 온라인 강의의 단점을 최대한 보완해 주신 부분으로 생각한다. 단지 처음 다가가는 것의 어려움을 느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아쉽게 다가온다.

수업을 계속 들으며 지금까지 나의 독서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책의 종류와 의도에 따라서 목표와 전략을 달리 가져가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여 주도적인 독서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그저 읽기 활동 자체로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 부분을 깨닫고 나는 수업 시간에 배운 독서 전, 중, 후 활동을 나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실천해 보았다. 먼저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읽는 목적과 알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하고자 했다. 또한 책날개에 있는 정보부터 작가소개, 머리말, 추천사 등은 꼼꼼히 읽어 배경지식을 활성화 하였다. 그 후 차례를 훑어보며 내용을 먼저 가늠해 보는데 이 부분에서 필요 없는 부분이다 싶으면 과감히 넘어갔다. 책을 읽는 중에는 밑줄긋기와 마음에 드는 부분은 따로 옮겨 적기를 통해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또한 난생처음 독서기록장을 만들어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줄거리, 느낌 등에 대해서 기록해 두었다. 이렇게 명확한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책의 내용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고 책의 내용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또한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의 장르가 정보와 지식을 주로 전달하는 비문학에 매우 치우쳐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동문학사 강의를 들으며 느꼈던 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작품들 중에 내가 읽어본 것이 몇 권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다시 문학작품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많이 피곤하고 지친 나의 영혼을 문학작품들은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다. 정신적인 풍요를 누리자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삶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과정을 듣는 동안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의 유년시절에도 이런 독서지도사 선생님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였다. 그렇다면 나또한 이렇게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를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내어놓기가 어렵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아 학습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독서지도사는 그야 말로 아이들의 인격과 지식을 동시에 끌어올려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문학성이 높고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 하는 좋은 책들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확신을 갖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다가오는 미래를 불안이 아닌 자신감과 희망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고도의 전인적 교육을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은 어른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학교 선생님, 더 나아가 우리 사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숙련된 독서지도사는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숙련된 선생님으로써 인격과 지식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준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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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책을 항상 좋아했고 독서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지식을 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어느 날,그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이끌림은 그간 미루어진 숙제를 해야 할 필연이기도 했다. 이미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던 독서 지도, 전 과목 지도 경력 10 년 차라는 이력이 무색할 정도로 남들에게 내세울 자격증조차 없었다. 잘 가르친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얘기는 넘치게 들었어도 실력 있다는 정통성 있는 말 한 마디가 이젠 꼭 듣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결단을 내렸고 서울 본부 주말 반에서 수강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4개월 동안 토요일은 한 번도 결석 안 하고 고양시 에서 서울 충 정로 까지 여정 이었다.분명히 그 여정 뒤에는 고생한 만큼 큰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강한 희망까지 겹쳐 늘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동여매고 4개월을 잘 버티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와서 점심때 까지 주구장창 서울 본부에서 강의를 듣노라면 왜 이 나이에 이렇게 고생을 하여야 하나? 라는 회의적인 생각에 잠시 마음이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새록새록 들려오는 강사님들의 알찬 강의 덕분인지 정말이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면 벌써 끝나는 시간이었다. 삶이라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에서 자신을 채워나갔던 열정의 시간 들.그 선상에서 같이 서 있었던 우리 주말 반 동기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후회 없었던 선택에 아낌없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런 동기들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강의하시는 강사님들 역시도 열정의 끈을 내려놓지 않으셨던 가운데 열강을 우리들에게 선사하셨다고 본다.어느 새 강의 실 안은 후끈한 열정으로 인해 모두들 빛나는 미소 한 자락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강의 하시는 강사님들 마다의 경험과 연륜이 묻어나는 노하우는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좋았다. 자칫 나도 10년이야 라는 매너리즘에 빠져 어느 것은 안 듣고 말고 할 선택의 여지가 없는 훌륭한 강의들 이었다.더욱이 강의하시는 강사님들 대부분이 강의를 듣고 있는 예전에 우리들과 같은 입장이셨던 분들이라 너무나도 듣는 우리들 입장을 잘 헤아려 노하우를 세심하게 전달해 주려 노력하시는 것 같았다.열정과 자신감이 넘쳐나서 어떤 강의는 들으면서 흐르는 눈물까지 주체할 수 없어서 강사님이 강의하시는 도중에 내 쪽으로 보시기 까지 해서 민망하기도 했었다. 바로 엄마가 강의 들으러 가는 날이 놀토면 학교에 안가고 홀로 집을 보고 있는 아들과 실력은 없고 그저 열정만 가득 차 막무가내로 가르쳤던 그동안 거쳐 갔었던 제자들이 생각나 나오는 참회의 눈물이기도 했다.
 
한우리 교육과정은 그 어느 하나를 가지고 장단점을 따지기가 참 어렵다. 거의 그 날의 컨디션과 순발력, 아이들과의 친화력, 독서력과 배경지식, 인터넷 자료에 의해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였지만 한우리 강의를 듣고 나서 독서지도의 중요성과 전문성에 대해 새삼 철저하게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특히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먼저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전략을 짜서 지도를 해야 한다는 점은 그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독서지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가르쳐야 함을 일깨워 준다. 그 전문성 뒤에는 논리적인 체계성도 따라야 함도 물론이다.처음 한우리 교재 두 권을 접 할 적에 정말 난감했다. 대학원 수준의 교재인데 이걸 어떻게 다 이해하고 시험을 치루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작아지는 자신을 느껴야 했었다. 그러나 수업은 그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고 이제껏 가르친 경험까지 있었으니 그 이해는 날로 커져 갔었다. 그것도 부족해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관련서적을 찾아보고 논문까지 뒤지곤 했다.
 
과제에 직면해서도 여차하면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는 날이 정말 많았지만 결코 힘이 든다거나 하기 싫은 적은 없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어찌 자격시험을 보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용기와 힘을 얻었던 시간들 이었다.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들은 공부하는 엄마에 대해 일기장에 우리 엄마가 공부하실 때마다 빛이 번쩍 난다라고 적은 적이 있었다. 자식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는 잔소리보다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됨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 효과를 본 것 인지자격시험을 보는 기간에 엄마보다 먼저 중간고사 시험을 본 아들은 평균 97점이 넘는 좋은 성적으로 엄마를 충분히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었다. 정말 그런 아들과 달리 남편은 언제 끝나냐고 자꾸 물으면서 불편한 심기를 자주 드러내곤 했다. 그런 남편의 태도와 상관없이 점점 더 독서 지도사 과정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이 정말 신기했다. 머릿속에는 꿈이 있었고 가슴은 열정으로 살아 숨셨다. 자신감도 넘쳤다. 본인이 가야할 길에 대해 한 치의 후회란 있을 순 없고 오직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런 마음과 열정이 하늘에 통했는지 과정이 끝난 후 한 달 뒤 치룬 독서 지도사 자격 시험도 최종합격을 했다. 그 때의 기분이란 온 세상이 다 본인보고 축하를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합격발표가 있은 후 한 달 후 예전에는 독서지도사 자격증이 없어서 감히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었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특기적성 독서 논술부 강사가 되었다. 자격증이 도착하는 던 날 자격증 부착 용지에 많은 노력과 정성으로 합격하신 만큼 앞으로 좋은 일들만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던 말처럼 좋은 일이 계속 함께 했다.
 
한우리에서의 4개월은 정말 10년을 한결같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달려왔던 자신을 다시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었던 내 인생의 둘 도 없는 시간들 이었다.같은 일을 꿈꾸던 동기 선생님들을 만나고 스터디를 통해 인생을 논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본인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꼈던 시간들 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이젠 아이들과 공유하고 다가서는 독서지도사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16 한우리, 내 2모작 인생의 출발점 - 장려상 91기 서울 주말반 강경애 1,543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나는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은 결혼으로 서른여덟의 나이에 생후 22개월 된 아들을 둔 늦깎이 엄마다. 언젠가 아들 녀석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갔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할머니냐고 물어보는 머리에 총을 맞은 듯 충격적인 일도 겪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나를 보고 늦둥이냐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이렇듯 늦게 시작된 출산과 육아로 나는 한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었었다. 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고 가벼운 위로로 다독여 주었지만 나에게는 그 시기가 사춘기 시절에도 겪지 못했던 아주 지독하고 아팠던 성장통으로 기억된다. 또한 아이의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작된 주부로서의 일상은 남들에게는 ‘월화수목금토일’이라는 일주일이 나에게는 반복되는 ‘월월월월월월월’이었고,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사물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만 덩그라니 정지해 있었던, 끝이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의 우울증과 조급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맹목적으로 책에 매달렸다. 육아, 요리 등 정보서적에서부터 그때그때의 베스트셀러, 그리고 경제, 과학 서적까지. 아이가 자는 시간이면 밥도 먹지 않고 책에만 매달렸다. 책이 없었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서 작은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한 지인이 그곳에서 ‘동화 읽는 엄마 모임’을 운영한다고 같이 할 것을 제안해 왔다. 매주 한 번씩 모여서 괜찮은 동화작가 한 명씩을 선정해서 그 작가에 대한 공부도 하고, 그 작가의 책들을 찾아 아이들에게 구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임이었다. 처음 모임 제안을 받았을 때는 아들 녀석에게 좋겠다 싶어 시작을 했는데, 동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점점 동화책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동화 읽는 것을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고, 그것을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한우리 독서지도사’ 과정이었다.
 
지난 3월 나는 한우리 독서지도사 91기 주말반에 입학했다. 3월 14일 개강식 특강에서 “우리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데, 미래보다는 과정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현재에 행복을 느껴보라”고 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이들은 어떤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엇보다 지금 현재 내가 몰입할 ‘꺼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이들 동화 읽는 즐거움이었다. 지난 4개월의 과정은 교과 수업의 지식과 정보를 넘어 훨씬 더 많고 큰 것들을 가져 주었다. 매 수업 시간 들려주었던 선배 강사들의 경험담과 노하우는 내가 꿈꾸는 미래가 되기도 했고, 나의 좌절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전체 32차시 14과목 14분의 선배 강사분들 모두가 프로 이상의 열정과 강의능력을 보여주신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
 
지난 4개월간 토요일은 내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되었고, 심심찮게 주어지는 서평 과제로 금요일 밤은 아이를 재우고 날을 새우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시간들 또한 행복했다. 내 서평과제에 대한 강평들은 때로는 시리고 따끔하기도 했지만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나의 수준을 받아들이고 나를 채찍질하는 힘이 되었다. 수업을 들으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단순히 책만 많이 읽는다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 제시해 준 책들은 모두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도서관에 들러 그날 제시되었던 책들을 대여해서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다.
 
그렇게 보낸 4개월을 나는 감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업 순간순간 잡념이나 근심걱정 없이 집중할 수 있었고, 이제는 독서지도사라는 첫 발로 나의 제2인생을 찾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남들보다 늦어서 불안하고 조급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도 현재 그 순간에 집중하고 행복해하는 독서지도사가 되고 싶다. 왜냐면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내가 지도해야 할 아이들도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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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오전 09시 02분 핸드폰으로 문자한통이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최종합격...’
 
내 눈을 의심하며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야 실감이 났다. 드디어 내가 해냈구나! 나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며 다독여 주며 꼭 안아주고 싶었다.
 
2005년 결혼 후 출산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한우리를 만나기 전까지 5살,3살의 두 아들을 키우며 아줌마로써만 살고 있던 나였다. 극성맞은 두 아들에 치이고 밤이면 남편에게 언제 오냐며 전화를 하며 남편이 올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정말 평범하다 못해 너무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던 그런나에게 ‘독서지도사’란 다섯글자가 눈에 들어온건 어느 여성인력센터의 수강생 모집공고 였고, 책을 좋아하는 나는 왠지 모를 설렘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우리 독서지도사 과정을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공부 같은 공부를 해본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고, 또한 직장을 그만둔 이후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나로서는 정말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 했다. 마침 두 아이를 모두 보육기관에 보내기로 한터라 오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우연히 여유돈도 생겼다. 정말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드디어 인터넷반 수강 신청을 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없었던 터라 차마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을 하고 첫 수업을 들으면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대학 신입생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거 같다.
 
마음 같아서는 출석하는 강의를 듣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인터넷강의를 신청한건데 시간활용도 할 수 있고, 강의를 다시 들을 수도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한달쯤 지나서는 남편에게 얘기도 했고 열심히 해보라는 남편의 응원 속에 정말 좋은 강의는 다시보기로 남편에게도 보여주었다. 특히 ‘교육심리와 학습지도’는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게 정말 꼭 들어보라고 하고 싶은 강의라서 남편에게도 보여주었다.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강사님의 강의 내용을 들으며 나도 변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만들었다.
 
또한 ‘도서선정의 원리’강의를 들으면서는 내가 현실문제에 너무나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과 아이들에게 무심코 읽어주던 책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평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유명한 전집을 사다 읽어주면 되겠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반성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동문학의 이해’에서는 홈쇼핑에서 그리 떠들어대는 ‘칼데콧 상’ 이 어떤상인지 유명한 명작들이 어떤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어린시절 읽던 동화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게된 유용한 강의 였다.
 
하지만 인터넷 강의다 보니 강사님들과 바로바로 의견을 교환할 수 없다는 것, 강의실의 열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과 같이 강의 듣는 사람들과는 활발한 교류가 없다라는 점은 정말 아쉬웠다. 출석강의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실시간 강의를 듣는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출석강의 시간을 좀 더 늘려주면 인터넷 수강자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4개월 간의 강의를 다 듣고 시험을 치르던 당일 정말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 꼭 수능시험을 치르던 19살 소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합격자 발표가 나서 이리 담담하게 글을 쓸 수 있지만 정말이지 심장이 터질듯한 긴장감을 느껴보고 좋은결과나 나니 앞으로 이런 짜릿한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샘솟는다. 적당한 기회가 있을 때 독서지도사로 활동할 나를 기대해본다.
 
그땐 아이들의 성장통을 치유해줄수도 있고 아픔을 보듬어 줄 수도, 그리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선정하여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조금은 답답한 현실에서 책을 통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함께하는 그런 독서지도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너무나 준비할 일들이 많을 것 같다.
 
한우리를 만남으로써 자존감을 되찾고 나아가 자신감 있는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어서 너무나 보람된 시간이었고, 예전의 나같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금만 용기내어 문을 두드리면 더욱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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