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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지도사 교육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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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내용보기
27 꿈을 갖는 다는 것은 - 입선 88기 조미라 1,983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대뜸 접수부터 하고 말았다.
나이라는 걸림돌이 스스로도 두려워서....
이십년도 훨씬 넘어서 새삼스레 책가방을 들었다. 대학 간 아들놈이 필통이며
공책이며를 사주며 파이팅을 보내 주었지만 젊은 사람들 틈에서 위축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나이에 대한 배려였을까? 반장이라는 타이틀을(나는 닉네임이라 생각했다.)얻은 덕분에 조금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워 질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떼어 놓고 공부하러 오는 젊은 친구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시기적절할 때 배울 수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나씩 ,둘씩....
가슴속에 뭔가 남기 시작하면서 ‘아! 나도 늦진 않은 거구나. 지금이라도 독지사가 있다는 걸 알고 또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우리를 몰랐다면 오랜 직장 생활에서 물러난 무료함에 다른 나이 먹는 아줌마들처럼 좋은 음식 찾아 먹으러 다니고, 모여서 다른 사람 험담하면서 인생을 소비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처럼 한우리를 만나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 온 것을 확신 했고 또, 그로 인해 꿈을 갖게 되었다.
한우리에서 얻은 귀한 보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서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나, 외국 근로자의 어린이나, 소외된 계층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일에 나눠주고 보태주는데 쓸 것 이다.
언젠가 어느 중 범죄자가 “누가 한 번이라도 내말에 귀 기울여 줬으면, 누가 한번이라도 날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줬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겁니다.”라고 했던 말을 기억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또 나타나지 않기 위해 내 주위의 소외된 어린이들이 따뜻한 가슴을 갖고 긍정적으로 자라나 또 누군가를 위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음에 내가 한 몫을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지만 그 숫자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이다.
적당히 포기 하는 게 쉬운 나이에
새로운 꿈의 첫발을 딛게 해준 한우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26 내 미래가 되어줄 한우리 - 입선 88기 이보람 1,606 내용 보기 내용 닫기
작년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친구로부터 독서지도사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독서지도사 과정을 들었고 현재는 시험에 합격해서 앞으로 독서지도사를 하면 될 것 같다고 좋아했다. 독서지도사라니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에서 그것에 대한 대강의 이미지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도 남았다. 그 때 나는 1년 전 대학교 국문학과에 편입해서 다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며 자격증 준비를 하기 위해 휴학을 결심한 상태였다. 내가 생각해 둔 자격증은 토익이며 한자능력시험, 한국어시험 등 이력서에만 잔뜩 쓸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한다는 독서지도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하면 되겠다!’하는 생각에 그 때부터 독서지도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만 몰랐던 것일 뿐 좋은 직업으로 자리잡아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성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하기 위해 항상 나의 조언자가 되어 주시는 고모와 함께 상의를 했고 교육을 받을 곳을 함께 찾던 중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다른 데에 비해 교육 과정이 다양하고 착실한 한우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2008년 늦더위가 한창 남아있던 9월 한우리 독서지도사 88기가 되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이 해소되는 첫 번째 달이었다. 특히 학교에서처럼 여러 과목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라는 틀 안에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해서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번 88기 독서지도사 과정은 기간이 꽤 단축된 4개월 과정이었다. 이것은 25살이라는 대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휴학을 결정하고 선택한 나에게는 부담을 덜어주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짧아진 기간만큼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지식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런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시간마다 여러분의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도 대부분 한우리 독서지도사 출신의 선생님들임을 알 수 있었고 같은 경험이 있는 선배님으로서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더불어 그 분들이 하시는 일에 큰 열의를 보여주셔서 독서지도사에 대해 더 많은 긍정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모든 선생님들이 책을 좋아하여 직업을 삼을 만큼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과 책을 통해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만큼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보며 이 직업에 대한 행복감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독서지도사에 대해 알아가며 수업을 듣는 한편 수업 과정 중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있는 감상문 과제는 다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은 아르바이트와 다른 자격증 공부로 채우고 있는 와중에 받은 감상문 과제는 쓸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달갑지 않았고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을 다시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러나 선정도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며 감상문에 담을 내용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고심하여 쓴 첫 번째 첨삭에서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날의 기쁨을 쓰지 않던 일기에 한 페이지 가득 담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계속 되는 과제에서 감상문을 쓰고 첨삭을 받는데 흥미가 생겼고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독서지도사가 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새 4개월의 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정말 빨랐던 시간의 결과임을 금색의 수료증을 받는 것으로 실감했다. 처음의 설렘은 잊은 지 오래 되었지만 다른 느낌의 설렘과 망설임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독지사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을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독서지도사를 선택했고 책이라는 것에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알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고민으로 가득 찼던 대학교 4학년 휴학의 끝자락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한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25 책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된 어느 사서이야기 - 입선 88기 야간반 조민지 1,520 내용 보기 내용 닫기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 하면서 많은 이용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끊임없는 다양한(?) 요구에 체계적인 독서지도사과정을 수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일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자꾸만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치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한사람의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는 것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텐데... 내 아이에게 책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려면 준비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한우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때부터 익히 들어서 한우리의 인지도는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수강신청 클릭!~ 그렇게 나의 긴 4개월 ‘독서지도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야근에 회식에 각종 행사에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수료 후 지금은 이 후기를 쓰면서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

한우리 교육과정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매우 체계적으로 수업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강사님들도 한우리 교육과정 출신 분들이라 그야말로 선배 같은 친근감에 더 편하게 교육에 임할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중요도 높아 보이는 강좌는(어디까지나 주관적이긴 하지만) 수업 빈도를 더 많이 배분하였으면 하는 점이다. 암기식 개론 수업은 교재로 대체하고, 실질적인 교육이었던 000강사님의 그 파워풀하고 열정적인 강의는 시간 분배를 조금 더 해도 될 듯 한데라는 아쉬움?
10년 전 한우리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강단에까지 서 계신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니 열심히 해서 나도 저렇게 당당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차시를 거듭할수록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훗날 준비된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조금 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시작한 과정이었지만 더 큰 꿈을 꾸어 본다. 꿈은 아무리 커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하니 우선은 크게 꾸어 보리라. 도서관쟁이다 보니 직업병에 의해 책만 보면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데 독서지도사과정을 공부하고부터는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들만 보면 붙잡고 앉아 책을 같이 읽고, 독서지도를 해 보고 싶어진다.

독서지도사과정을 듣기 전의 개념과 지금 수료 후의 개념 정립이 달라졌다. 단순히 책만 바르게 읽도록 지도해 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경험(간접, 직접)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읽었던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김은하 저, 현암사 펴냄)’에서 보았던 구절이 떠오른다. ‘독서지도사는 아이와 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사람이다. 독서지도사의 역할은 특기 교육 교사라기보다는 상담자에 가깝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을 끊임없이 검토하여 더 좋은 자료를 찾아내야 하고, 그 정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독서지도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부담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이 사실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난 이미 수료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시험에 합격해서 지도교사 입문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독서지도사로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아이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애정 어리 관심을 기울이며,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의논 상대가 바로 나, 독서지도사 선생님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후기를 마친다.
24 행복한 독서지도사 3 인천연수지부 표선실 1,672 내용 보기 내용 닫기
- 학부모

부모는 내 아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공부하고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바람이라면 좀 더 찾기 쉽고 가까운 곳에 성인교육에 대한 강좌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들은 이웃에 같은 학부모와 하소연식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이들을 많이 지도하다 보면 아이의 문제가 곧 부모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나이가 40세가 되면 지식의 평준화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살림을 꾸리며 자신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최고 학력을 가진 주부들도 단순화되어서 지식의 평준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들도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었는데 옛날에 받았던 교육만으로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고정관념에 가둘 뿐 아니라 성숙한 삶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머니 독서모임은 이런 고민 끝에 만든 모임이다. 한우리 교재 <독서와 논술1> 중학생용을 가지고 독서활동을 하였다. <독서논술 1>은 교과와 연결된 단편 소설이 들어 있는데 어머니들의 정서에 잘 맞고 필독서도 읽기에 적절하여서 같이 읽고 토의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어머니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분들과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연결이 되어 만나고 있다.

학부모 모의수업
한우리에 다니는 자기 아이의 필독서를 읽고 <생각하는 나무>로 아이들과 똑같이 해 보는 수업이다. 모의 수업을 통해서 내 아이가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지를 알게 되고 토의할 때에도 손을 번쩍번쩍 들지 못하는 사정도 알게 된다. 그리고 글도 직접 써 보게 되면 독서감상문 한 편 쓰는 것의 어려움도 알게 되어 독서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업 후에는 평소 자녀지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여러 가지 좋은 정보를 공유한다. 모의수업을 마치고 학부모 중에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기도 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권해달라며 책을 빌려 간다. 그리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학부모 모의 수업이나 간담회에 참여하신 학부모는 독서교육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꾸준하게 독서교육에 동참하거나 주위의 분들에게 한우리 독서교육에 대해 권하고 자랑하는 홍보대사 역할도 한다. 그 외에도 학부모와 관련된 여러 가지 행사들을 하는데 자녀지도와 독서교육계 강사의 강연회를 자주 열기도 한다. 독서클럽 회원 모집을 할 때 아파트 단지나 거리에서 판촉활동을 하는 것이 홍보하는 데에 빠른 효과를 보는 반면에 독서강연회는 강의를 알리고 준비하는 사전 작업이 길고 복잡하지만 두 시간 정도의 강의로 한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바꾸기 때문에 확실하고 장기적인 독서운동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독서신문과 추천도서 목록을 나누어 독서 저변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열기도 한다. 학부모 강연회는 연 2회 정도, 독서캠페인은 년 6회 정도 하고 있다.


- 생각하는 나무를 더 재미있게

한우리 필독서와 견학
한우리 독서지도사 과정을 시작하고 한우리 필독서와 <생각하는 나무>로 수업을 하자 체계적인 교재로 독서수업을 받게 되었다며 학부형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은 한우리 연구원이 선정한 도서를 월 2권씩 받고(문학, 비문학으로 구별된 장르별 도서와 테마를 중심으로 한 도서) 책을 읽고, 토의를 하고, 주제별 독서활동을 하면서 책읽기를 즐거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책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또 다른 책을 찾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서점에도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자주 가지 않는 편이어서 아이들은 도서관이 무얼 하는 곳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많았다. 우선 도서관에 가보지 않은 아이들을 20명 정도 추려서 도서관 견학을 하기로 하였다. 추리다보니 모두 1, 2학년의 아이들이다. 도서관 가는 길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버스비와 짜장면(국어사전에는‘자장면’ 이라고 해야 맞춤법에 맞는다지만 난 그냥 짜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한 그릇 사먹을 돈을 가져오도록 해서 줄을 세워 버스를 타고 갔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처음 보았고 또 그 많은 책 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을 찾고는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 했다. 아이들에게 그 때의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은 지금에야 말이지만 아이들은 좋았겠지만 나는 줄에서 멀어져서 자꾸 빠져나가는 아이를 잡으랴,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아이들 동전을 세어주기도 바빴다. 더 끔찍했던 건 1, 2학년 아이들이 대부분 짜장면을 스스로 비벼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날 나는 짜장면 20그릇을 비볐다.

아이들과 독서 수업을 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최대한 재미있게, 실제로 볼 수 있게,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게 그리고 그것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말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필독서가 어떻게 선정되는가에 따라 월간 행사가 잡히고 계획이 정해진다.
한우리 필독서 중에 예술가‘백남준’에 대한 전기를 가지고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그 동안 우리가 접했던 위인전과는 달리 현대에 살아 있는 예술인이라서 더욱 친근했고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하는 나무>로 토의를 했는데 교재 안에는 백남준의 작품들이 사진으로 많이 나와 있었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보다는 그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잡아서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하나씩을 정해서 사진을 붙이고 그에 대한 작품 설명으로 도표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자료를 찾게 해서 한 작품만이라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 백남준 전시회에 가기로 하였다. 전세버스를 빌려서 전시회를 보고 초등학교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소리 예술, 행위예술, 텔레비전을 비롯한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들로 표현한 메시지를 느껴보려고 노력하였다.
앞에서 ‘마침 백남준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라고 썼지만 한우리에서 필독서를 선정할 때 전시회의 일정을 미리 알고 어린이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전시장의 위치와 전화번호까지 알려준 것이 참 고맙다.

우리 전통 악기와 관련된 필독서를 공부하다가 서양악기와 우리 나라 악기 이름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우리 나라 악기로 현대 음악을 연주한 테이프를 구해서 악기의 이름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서로 비슷한 소리를 구분해보기도 하는 수업이었다. 다행이 테이프 안내서에 악기와 연주한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양 악기는 종류도 많고 악기 이름도 외우기도 어렵고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서양 악기가 궁금해지면서 아이들에게 악기를 단 몇 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악기점을 기웃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악기점에 들어갔다. 내 생각으로는 악기점 주인은 악기에 대해 많이 알 것이고 악기를 다룰 줄 아니까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악기점 견학을 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악기를 살 것 같지도 않은 아줌마가 독서가 어쩌고 악기점 견학이 어쩌고 하니까 말대꾸도 하지 않아서 혼자 머쓱해져서 악기점을 나왔다. 며칠을 보내다가 예술회관에서 청소년을 위한 인천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이들과 교향악단 연주회에 가기로 하였다. 전화 예약을 하는데 유치부 어린이부터 중학생까지 간다고 하니까 주최측에서는 난감해 한다. 복장도 갖추고 떠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시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 석 대도 제공받아 연주회에 가게 되었다.
견학을 가기 전에는 사전에 공부를 치밀하게 시켜야 떠들지도 않고 견학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연주회에 가기 2주 전부터 오케스트라의 위치와 악기 이름을 공부하고 공연장 예절이나 복장을 가르쳐 주었다. 가장 깨끗한 신발과 (슬리퍼는 절대 안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나는 옷을 입고 머리를 곱게 빗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안되고 언제 박수를 쳐야 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그 날은 미용실에서 머리도 손질하고 화장까지 한 공주들, 멋지게 2대 8로 기름발라 빗은 왕자들로 가득찬 멋진 날이었다. 독서지도를 하면서 실제로 만지고 보고 느끼게 하려고 갔던 곳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음에 나오는 활동들도 모두 책과 연계된 확산적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식물 사전 만들기
동물, 식물에 대한 필독서(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를 할 경우에는 ‘동물사전 만들기’를 할 수 있다. 각자 다른 동물에 대해 집중조사를 한다. 그리고 조사한 대상의 사진을 보고 똑같이 그려서 붙이고 조사한 내용을 적고 정성껏 꾸민 후에 인원수에 맞게 복사하여 한 편씩 모은 것을 편집해서 묶으면 동물사전이 된다. 동시집, 요리책, 놀이사전, 사전처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도 이런 방법으로 만들 수 있다.

23 아름다운 도전 1 - 독서지도사가 되다 여주 문화원 김양숙 2,774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나는 늘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다.
때로는 짝사랑으로 시작해서 짝사랑으로 끝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관심 하나로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사랑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오늘은 2~3년 간 혼란과 격정의 사춘기를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고민해온
중2 여학생으로부터 예쁘고 하얀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으로 받았다.
“제가 힘들 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구요,
가끔씩은 선생님도 힘드실 때 저를 찾아주세요. 저도 이젠 많이 컸다구요~ . ”
난 아이들이 저마다 겨드랑이에 하나씩 날개를 달고
내 곁을 떠나 날아오를 때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먼 훗날 그들이 고단한 항해 끝에 지쳐 돌아오면 편히 쉬었다
다시 떠날 수 있도록 옛 친구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다.
독서지도사 수기공모에 참여하기를 적극 권해 주신
한우리의 이현기 선생님과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지난 10년 간 내 곁에서 힘찬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착한 남편과
두 아이들과 이 영광을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


1. 독서지도사가 되다

가을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우리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차가운 가을 바람에 실려서 빨라진다. 한우리독서문화원에서 집으로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째다. 2년 남짓 집에서 독서 지도를 한 것까지 치면 독서 지도를 시작한지 올해로 9년째 접어든다. 그 긴 세월을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오로지 독서지도사의 길을 걸어온 나를 되돌아 보면서 나 스스로도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제2의 인생기를 찾은 즐거움도 있지만 독서지도사로 일한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 교육이 저절로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일석이조’라는 말은 내 인생에 아주 적절히 사용되었다. 독서 지도를 통해 중년에 새로운 나의 미래를 찾았고 또한 독서 지도로 아이들의 미래를 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살다가, 큰아이 3살 때인 1988년에 남편의 직장 관계로 여주로 왔다.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지방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던 1994년, 우연히 한우리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내 인생의 모험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막 입학했을 때여서 난 엄마로서 이제부터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은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평생 줄 수 있는 책을 아이에게 연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독서 지도라는 것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여서 지방의 작은 읍에는 아무리 찾아도 독서 지도를 하는 곳이 없었다. 난 지방의 열악한 교육 환경만 탓하고 있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내가 배워서 우리 아이를 가르치기로 결심을 했다.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제일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서울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여주에 모셔다 놓는 일이었다. 아직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서울로 다니면서 공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타지에서 아이들을 이웃이나 학원에만 방치하는 것은 마음이 안 놓였기 때문에 친정 어머님께 떼를 쓰다시피 해서 어렵게 여주로 모셔왔다. 그래서 우리 집은 1층에, 친정 어머님 집은 같은 건물 3층에 마련했다. 함께 한 집에서 지낼 수도 있었지만 시집 간 딸집에 사시다가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해 하실까 봐 집만 따로 마련하고 친정 어머님은 눈만 뜨시면 우리 집으로 늘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셨다.

아이들 문제가 해결된 후부터 난 순풍에 돛단 듯이 본격적으로 역삼동에 있는 한우리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리상 문제가 있어서 통신반으로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현장감 있는 수업을 받기 위해서 일주일에 2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2번씩 갈아타면서 한우리로 직접 다녔다. 매주 써 내야 하는 독후감과 사설 숙제에 치이면서도 6개월 내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지냈다. 구성원끼리 서로 격려해 주고 서로 도와 주면서 그렇게 6개월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난 무사히 한우리 9기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우리독서지도사 과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게 확연하게 보일 것 같았던 독서지도사의 길이었는데 졸업이 다가오면서 모든 것이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 독서 지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땐 한우리에서 공부하고 새롭게 아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만 했는데 조금씩 알아가면서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독서지도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 모습에 스스로 불안해졌고, 하나씩 배울 때마다 난 한번씩 쑤셔놓은 케이크처럼 볼상 사납게 변해갔다. 점점 모든 게 제대로 정리도 안 되고 그저 불안하고 힘들기만 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독서지도사 과정을 시작했을 때보다 졸업할 때 오히려 내 위치는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이상하게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졸업과 동시에 조금이나마 있던 자신감마저 없어진 것이다. 더구나 이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면 막연히 부럽기만 하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못할 뿐 구체적으로 시작할 용기도 나지 않고 그저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이런 나의 나약함에 나 스스로 화도 나고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로 하소연할 수도 없어서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데 한우리 연구원 모집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그래서 난 자격증을 따기도 전에 졸업을 하자마자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기 위해 박철원 회장님(그 당시는 본부장님)소속 연구원 모집에 응시한 후 면접을 통해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결국 6개월이면 끝날 것 같았던 서울 여정은 6개월이 지난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용기를 내어서 큰아이 친구들을 포함해 5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독서 지도를 시작할 때의 어려움은 그때 함께 했던 다른 연구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으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현재 한우리 강의를 맡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 때 함께 연구원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그 때는 그 사람들의 열의에 자극 받아 안주하려는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었다.

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서울로 원정 갔었는데 매번 가는 장소가 달랐다. 역삼동, 선릉, 잠실, 합정동 등 독서 지도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강의하는 곳이면 서울의 어느 곳이든지 다 쫓아다녔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면 마치 엄마 제비가 새끼 제비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이 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지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때 나의 억척 덕분에 지금 나에겐 꽤 많은 수료증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도 한우리독서문화원의 내 자리 뒷벽을 차지하고 있는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마인드맵 지도사, NIE 지도사, Reading Specialist(독서문제전문가), 영어독서지도사, 독서교육학 석사 학위증이 그것이다. 어쩌다 그것들에 눈이 머물러 살펴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숨 가쁘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그때의 열정이 지금도 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난 늘 부족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늘 배고프고 아쉽고 허전했다. 그래서 너무나 불안했다. 그것이 나를 끝없이 배움터로 몰아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 아이만 가르치고자 했을 때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집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이젠 부모의 역할로만, 단순히 주부의 부업으로만 여길 수 없는 책임감이 날 사로잡았다. 무료라면 몰라도 돈을 받고 가르칠 때는 돈을 투자한 것만큼 내게 맡겨진 아이에게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그런 강박감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주변에서 피아노나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만 보더라도 대개 전공자들로서 보통 5년 이상은 관련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한우리에서 6개월 배운 독서 지도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엔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가르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하고 오전엔 내가 공부하러 다니고 오후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늘 공부하는 자세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차츰 독서 지도에 관심 있었던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수업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맡은 수업이 늘어나자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맞춰서 서울에서 여주로 돌아오기가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서 내 차도 장만하고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하루가 멀다하고 질주하면서 정신 없이 서울과 여주를 오가면서 지냈다.

내가 그렇게 정신 없이 나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아이들의 이해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친정 어머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당시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작은 아이는 5세였기 때문에 사실 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일하는 데 점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길어야 1년 정도 신세를 지려고 연로하신 친정 어머님을 서울에서 여주로 모셔왔었는데 공부에 대한 욕심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친정 어머님을 3년 가까이 여주에 붙들어 놓게 되었다. 나중에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자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 쓰느라고 정작 우리 집 아이들을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모순이 날 힘들게 할 때가 많았는데 친정 어머님 덕분에 겨우 조금이나마 정신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때 친정 어머님의 희생에 보답하고픈 마음에서 더 열심히 그 힘든 과정을 씩씩하게 헤쳐 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하나 하나 어렵게 배운 독서 지도에 관한 이론들을 내가 직접 독서 지도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독서의 불모지였던 여주에 독서 지도의 뿌리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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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화하는 학부모들

처음에는 ‘독서는 단순한 글쓰기’ 정도로만 인식했던 학부모들이 지금처럼 독서를 학습의 기초로 인식하고 한우리로 찾아오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한우리에서 독서지도를 통해 학습의 기초를 닦게 한 다음 본격적인 학습으로 들어가게 하려는 학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처음에 한우리를 찾아온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일기나 독후감을 잘 쓰게 해달라거나, 교내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상타게 해달라든가, 동화 구연 대회용 글을 써 달라든가. 웅변 원고를 써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독서 지도 목표를 학습의 기초를 닦는 것으로 확실히 정해놓고 그것을 학부모들에게 인식시켜 드리기 시작했다. 학부모와 상담할 때마다 학습의 기초인 독서(독서 방법과 독서 태도)를 통해서 독서 흥미를 높이고, 또 토론을 통해 생각을 넓히고,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표현해내서 학습 효과를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나의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때만 해도 내 주변에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학습지를 시켰거나 웅변 학원에 보냈던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미 그렇게 도움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난 나의 독서 지도 목표와 독서 지도 방향을 확실히 밝히고 난 후, 학부모들 스스로 선택하시도록 했다. 처음엔 내 교육 방법에 반신반의 하시던 학부모들께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 능력과 함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자 점점 독서가 학습의 기초라는 나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읽기 능력이 다른 학습 능력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와 학부모는 함께 너무나 기뻐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의 상태와 수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어찌될 수 있으니 뭘 조심하고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처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학부모와 함께 아이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진지한 상담이 오고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님들이 느끼기엔 학교는 학교대로 선생님이 어려워서 못 가고, 학원은 학원대로 성적 향상에만 신경 쓰느라 학과별 성적 상담은 있을지언정 아이들 개개인의 인성 파악을 통한 개별 상담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우리 집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부모로서 정말 아쉽고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를 찾는 학부모님과 정보를 공유하고 내게 맡겨진 아이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생긴다는 말처럼 난 고여 있는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 여주에서 서울로 다양한 공부를 배우러 다니면서 점점 나의 전문 영역을 넓혀갔다. 그 때 솔직히 힘은 무척 들었지만 그 덕분에 많은 분야에서 최신 정보를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난 단순한 아이들 글쓰기나 독서 지도뿐만이 아니라 부족하나마 독서 클리닉에도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개개인의 상담에 대한 어머님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교육 정보가 부족한 지방이어서 나의 노력은 더욱 환영받을 수 있었다. 정확한 진단과 평가 후에 계속적인 지도와 교육이 이루어지면 못 고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내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아이의 변화에 무관심한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남들 따라 학원에 보내면 저절로 아이가 변하겠지 싶은 마음에 무조건 보내놓고 방관하는 학부모들… . 아니면 너무 바빠서 자식을 돌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들, 특히 밤늦도록 장사를 하는 부모님일 경우에는 내가 아무리 정확한 진단을 하고 처치를 해도 아이들이 날 만났다가 집에만 가면 다시 흐트러져서 제자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유난히 장사하는 분이 많은 이곳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독서를 통해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고 아이들 스스로 삶의 목표를 정하게 하는 것이 일하는 부모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주 현실을 인식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진지한 상담이 시작되면서 학부모들은 차츰 독서와 학습의 중요도를 같은 무게로 느끼기 시작했다.
21 아름다운 도전 3 - 진정한 스승되기 여주 문화원 김양숙 1,269 내용 보기 내용 닫기
3. 진정한 스승되기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을 오로지 독서 지도와 학부모 상담에 파묻혀 지냈다. 나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한우리는 잘 운영되었고 어느새 대기하는 학생까지 생겨났다. 어느 정도 한우리가 안정권에 들어오자 지금까지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급하게 뛰어다녔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오랫동안 쌓아 온 독서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수업의 빈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어줍지 않게 나 스스로 교사로서의 자격을 묻는 것이었다. 비록 사교육이긴 하지만 교육 현장에 있으니만큼 공교육, 사교육을 불문하고 학생들을 교육시키려면 나 스스로 진정한 스승이 되어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체계적이고 학구적인 독서 이론 학습의 필요성이 느껴진 것이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독서교육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때 나는 3년 동안 고생하셨던 친정 어머님을 서울로 이미 보내드린 상태였고, 우리 가족끼리 그때그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본격적인 홀로서기 생활을 2년째 하고 있었다. 난 급한 마음에 당장 가족 회의부터 했다. 친정어머니가 안 계셨기 때문에 내가 뭘 시작하려면 이젠 가족의 절대적인 협조와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로 공부하러 다녔던 것은 오전 중에 이루어지는 일이었지만 대학원 공부는 오후에 갔다가 거의 한밤중에 오는 일이라서 가정주부로서 한밤중까지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도 내 계획과 결심을 듣고는 나보다 남편과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를 격려해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특히 남편은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거라면서 모든 것을 다 도와줄 테니 시작해보라고 적극적으로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마침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아이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서 난 41세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처음 99학번을 받고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의 그 감격은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은 중년인 내 나이를 멈추게 했고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사로서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실전이나 현장에서 배우지 못한 교육 이론을 이제야 제대로 하나씩 배워 나간다는 안도감이었다. 강의 시간만 되면 나이 어린 강사들부터 연로하신 교수님들까지 거침없이 만나면서 심도 있는 토의를 하고 새벽 1시나 2시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하게도 난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일주일에 2번씩 여주에서 역곡으로 왕복 5시간을 소비하고 다녔지만 대학원에서 최신의 독서 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대학원 생활은 내게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 교재의 대부분이 우리나라 책보다는 영어 원서가 많아서 꼬부랑 글씨와 싸움해가면서 리포트 쓰느라고 컴퓨터 앞에서 밤새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한밤에 아이들의 밤 인사를 받고 과제 작성을 하다 보면 날이 밝아져서 컴퓨터 앞에서 아침 인사까지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밤을 꼬박 새는 일이 반복되자 나중엔 피부도 거칠어지고 건강도 나빠지고 특히 눈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 도수도 올려 써야 했지만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내 열정이 난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난 끝없이 도전을 했고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진정한 스승이 되기 위해 무조건 앞만 보고 가던 2년 반의 힘들었던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2001년 9월에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처음엔 무모할 것 같았던 내 계획이었는데 마침내 해내고 얻은 것은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고, 그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이론들을 모두 현장에 활용해 볼 수는 없겠지만 나이 들어 스스로 내가 필요해서 했던 공부라서 그런지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지식들이었고 모든 게 너무 소중했다.

난 졸업논문으로 읽기부진아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지방에 살면서 독서 지도를 해보니 한글을 정확하게 다 떼지 못해서 생긴 읽기부진아에 대한 문제가 의외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대도시는 학습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그런지 입학 전에 미리 한글을 완벽하게 다 떼고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지방으로 갈수록 한글을 다 떼지 못한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읽기부진아의 경우 대개 1학년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1학년 학급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부진아로 남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입학하자마자 초기에 읽기부진아들을 고쳐야 되는데 읽기부진아 대부분이 학습지를 통한 단순한 자모의 반복이나 내용 없는 낱말들의 반복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난 그림책을 통해서 한글을 깨우치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1학년 읽기부진아를 위한 조기 교정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는데 부족한 논문이었지만 졸업논문을 쓰면서 읽기부진아에 대한 공부를 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성과였다. 또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초?중?고 교사들을 통해 학교 밖에서만 보아왔던 획일화된 공교육에 대한 나의 편견도 바꿀 수 있었으며, 공교육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긍정적인 사고로 공교육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자 공교육자와 사교육자는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반자라는 긍지와 남다른 각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난 내가 아니어도 발전할 수 있는 아이들보다 내가 꼭 필요한 아이를 만나서 제대로 교육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되고 싶었다. 교육이란 글자의 본래 문자적 의미를 보더라도 가르쳐서 키우는 것인데 만약 교사가 가르치기만 하고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교사도 단순한 기능인에 불과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생활은 그동안 어줍지 않게 교사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나를 반성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많은 교육 이론들을 다시 공부 하면서 끝없는 희생과 봉사가 곧 교사의 신성한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 아름다운 도전 4 -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여주 문화원 김양숙 1,410 내용 보기 내용 닫기
4. 가장 가슴 아픈 기억

지금까지 독서 지도를 하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기억은 졸업논문을 위한 실험 수업을 했었던 2000년 겨울방학 때였다. 1학년 읽기부진아 10명을 초등학교에서 추천 받아 1달 간 매일 무료로 한우리에서 독서 지도를 하고 있었다. 모이게 된 대부분의 아이들은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두었거나, 결손가정 아니면 고아원 아이들이었다. 그 중 한 아이는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이들은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군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금을 받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그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할머니와 통화했을 때 아이의 부족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서 무료 독서지도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10명의 1학년 아이들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던 설레던 겨울,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다. 그 아이가 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훔치다가 그만 나한테 들키고 만 것이다. 그것도 내 돈을 훔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세번째나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선생님이 수업 중인 교실 바로 옆에서 가방을 열고 지갑을 열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을 훔쳤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때 금액이 무려 8만 원이나 되어서 더욱 놀랐다. 내 지갑의 만 원짜리를 모두 꺼내려다가 내가 갑자기 교실에서 나오자 아이도 깜짝 놀라서 그만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호기심에 1장 정도는 몰라도 배짱 좋게 그 자그마한 손으로 8장을 덥석 집어들었을 그 순간을 생각하니 난 너무 기가 막혔다. 그동안 한우리를 운영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늘 믿고 지냈기 때문에 난 모든 것을 다 자유로운 상태로 놔둔 채 수업을 해왔었다. 뭘 잃어 버려도 그게 책이겠거니 생각했고, 읽고 싶어서 가져간 것이니까 다시 가져오겠지 하면서 마음 편히 생각해왔다. 단 한 순간도 한우리에서 돈을 잃어 버릴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때의 충격 때문에 그 후로는 책상 서랍도 잠그고 내 가방도 의자에 그냥 올려놓지 않고 서랍 속에 넣고 잠근다. 책상 열쇠를 잠글 때마다 마치 내가 아이들을 믿지 못해 아이들과 나를 단절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생긴 후 그 아이의 집에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아이의 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몹시 놀라시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너무 죄송하다고만 계속 말씀하셨다. 다음날 아침, 한우리에 온 아이의 콧잔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나 있었는데 물어보니까 할머니가 주전자 뚜껑으로 때렸다고 했다. 나 때문에 맞은 것 같아서, 아이의 상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처음에 내가 그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인 한글도 잘 모르고 책읽기도 무척 싫어하였다. 또 할머니가 자주 아프신데 그럴 땐 할머니가 밥도 안 주셔서 그 아인 자주 굶는다고 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다른 아이들보다 그 아이에게 신경이 더 쓰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 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안아주고 좋은 이야기도 해주었다. 나와 많이 친해지자 그 아이는 나에게 잘 웃어주었고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해주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 아인 나에게 독서 수업 끝나고 집에 가지 않고 한우리에서 책을 더 읽고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아이에게 독서 지도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책읽기를 싫어하던 그 아이가 스스로 남아서 책을 읽겠다는 말에 나 스스로 감동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나의 어리숙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수업 후 집에 가지 않고 한우리에 남은 것은 책을 읽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다음 수업 시간을 위해 교실로 들어가길 기다린 것이었다. 그래야 마음놓고 지갑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우리에 남아서 책읽기를 내게 허락 받았고 그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나를 쳐다보면서 나의 칭찬을 계속 받아온 것이었다.

처음에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다. 어떻게 순진하고 어린 1학년 아이 마음 속에 그런 영악한 마음이 들어있을까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내 지갑을 3번이나 뒤졌다는 것임을 알고는 정말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고 알면 알수록 그 아이에 대해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진실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느껴보는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안다 해도 그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혀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회의까지 밀려왔다. 내가 교사로서 어디까지 그 아이를 감싸주고 책임지고 품어줘야 하는 건지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끝까지 포용할 힘이 없는 비겁한 내 자신을 보고 더럭 화도 났고 겁도 났다. 그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독서 지도를 통해 보듬어주려고 했던 교사로서의 내 행동이 다 가식이었던 것 같아서 갑자기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자신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스스럼없이 믿고 지냈던 아이들이 불현듯 의심스러워지고 내 마음도 이미 아이들에게서 멀리 떠나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조차 왠지 날 비웃는 것 같았고 난 교사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조절력도 상실되어 가는 것 같았다. 논문을 위해 준비된 학생들이고 수업이었지만 보람보다는 내가 오히려 교사로서의 자질을 최종적으로 실험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도둑 사건이 생긴 날부터 실험 수업을 끝마칠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아이는 실험 수업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꾸준하게 다녀주었다. 난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예전처럼 대해지지가 않아서 괴로워했지만 그 아이는 매일 매일 나와서 수업 시간에도 계속 날 보며 웃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대했다. 그 때 그 순간들은 나에게는 차라리 너무 힘든 고문의 시간들이었다. 솔직히 난 하루라도 빨리 실험 수업을 끝내고 그 사건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겐 그 사건이 잊혀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나마 아이들로부터 도망치려했던 교사로서의 불성실함이 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려왔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지난 2000년 겨울방학은 지금 생각해도 내게 너무 슬프고 힘들었다.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는 순간은 내겐 너무나 불행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고통스러웠던 긴 겨울방학이 끝난 2001년 어느 봄 날, 그 아이는 씩씩한 2학년이 되어서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봄바람처럼 상큼하게 나를 찾아왔다. 한우리에 책을 보러 온 거라면서 그 때 같이 공부했던 다른 아이들 2명과 함께 나에게 발랄하게 인사를 했다. 난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그 아이를 보자마자 두 팔 벌려 덥석 안아서 번쩍 치켜들었다. 자그마한 몸집이 내 가슴에 안기는 순간 난 그동안의 마음의 빚을 덜고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마치 지루하고 긴 겨울이 끝나고 나에겐 그제서야 진짜 봄이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 그 일이 일어났을 땐 두려운 마음에 진심으로 안아주지 못했지만 나중에 찾아왔을 때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 처음에 마음으로부터 진실하게 그 아이를 품어주지 못하고 보냈던 것이 너무 미안했었는데 다행히도 그 아이가 다시 찾아와 난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내가 다정하게 반기면서 꼭 안아주자 그 아이도 너무 좋아하였다. 책이라고 하면 싫어서 도망 다니던 아이들이었는데 나랑 그림책 읽고 활동했던 경험들이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노력이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에 움츠러 들었던 교사로서의 자신감을 그 때 조금은 되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겐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특히 부모의 관심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해보는 사건이었다. 사랑이 결핍된 결손가정의 아이들과 한달 간 매일 독서 수업을 하면서 어른들의 이기심이 아이들의 동심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가치관을 흔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난 이 일을 계기로 나에게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내 가정과 내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성실하게 지켜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른들과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어린 마음들을 독서 지도를 통해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독서지도사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19 아름다운 도전 5 - 가장 보람 있는 기억 여주 문화원 김양숙 1,265 내용 보기 내용 닫기
5. 가장 보람 있는 기억

작년 가을 이맘때가 생각난다. 그 때는 가을임을 느끼고 말고 할 사이도 없이 정신 없이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5학기를 2001년 9월에 마치자마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10월부터 중3짜리 큰아이의 고입 열풍이 시작되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목표가 확실한 아이라서 중학교 내내 전교 1, 2등을 다투면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고 특목고 입시 준비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중1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낙방하자 큰아이는 난생 처음으로 인생에서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막바지 시험 준비 기간인 중3 여름방학 때부터는 길어야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자면서 공부하느라고 너무나 힘들어했었는데, 그 모든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밀려온 것이었다. 난 그런 큰아이를 보면서 담담하게 입시 결과를 받아들이느라 침묵을 지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큰아이는 그 때부터 서서히 대단한 결심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건 그동안 아무도 생각지 못한 유학이라는 결심이었다.

10월 어느 날 큰아인 내게 민사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서 허락해달라고 하였다. 갑작스런 큰아이의 유학 결정에 대해 남편은 중3때 유학 가는 것은 시기적으로 어중간해서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고, 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큰아이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보자고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큰아이의 상실감을 치유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사고보다 더 큰 인생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스스로 상실감을 치유하는 것이 최고일 것 같았다.

결국 큰아인 유학 결정을 내린 지 2개월 만인 작년 12월, 한국을 떠나 막내 외삼촌이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제외국인고등학교(ISKL)로 갔다. 미국에도 외삼촌이 있었지만 큰아이는 영어와 중국어를 다 배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말레이시아의 국제외국인고등학교를 택했다. 앞으로 경영학을 공부해서 CEO가 되는 것이 큰아이의 꿈이었는데 중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미국 대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은 큰아이가 결정을 했고 난 아이의 결정에 대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만 해주었다. 무모한 결정이라고 처음엔 극구 반대하던 남편도 아이의 결심이 워낙 확고하고 나도 곁에서 도우니까 나중엔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학에 관련된 실제적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주었다. 그렇게 큰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부랴부랴 중3때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졸업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타고 훌쩍 한국을 떠나버렸다.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오자 큰아이가 전교 1등상을 받게 되었다면서 학교에서 졸업식에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큰아이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타국에서 정신 없이 공부하느라고 정작 본인의 졸업식장에는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큰아이 대신 내가 시상대에 올라가서 큰아이가 누릴 영광과 우렁찬 박수를 받고 내려왔다. 졸업식을 끝내고 큰아이 이름의 많은 상장과 상품을 받아들고 학교를 나서는데 갑자기 커다란 허전함이 나에게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유학이란 이름으로 큰아이는 자기 인생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에 엄마의 의연함으로 그 순간의 허전함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유학간 지 6개월이 지난 2002년 여름방학에 큰아이는 전과목 ‘All A’를 받아들고 한국으로 왔다. 공항에서 맞이한 아이는 8kg이나 살이 쪄있었고 노트북을 한 손에 든 모습이 제법 대학생 같이 늠름해 보였다. 유학 가기 전에는 입시 공부에 매달리느라, 미래를 고민하느라 몸도 삐쩍 마르고 지친 모습이었는데 유학 가서 테니스, 마라톤, 축구 등 운동을 통해 다져진 체격 때문인지 이젠 제법 듬직한 청년 같아 보였고 어느덧 홀로서기를 한 아들이 정말 대견해 보였다. 특목고 입시 실패에 대한 오기로 한국을 떠난 만큼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효과인 것 같아 우리 가족은 진심으로 큰아이의 화려한 귀국을 축하해주었다.

지금도 큰아이를 생각하면‘내가 독서지도사가 되길 정말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매주 독서 토론을 통해서 만나기 때문에 아들과 엄마의 사이는 늘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큰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속셈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컴퓨터(또는 영어)와 독서 지도만 배웠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넉넉해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주 적고 늘 여유로웠다. 내가 바쁜 탓에 속셈 학원이라도 보내서 부족한 학습을 보충시키고 싶었지만 워낙 아이가 완강하게 학원을 거부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봐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학교 공부를 대신해서 독서만은 철저히 시켰다. 그대신 자기 학년 반이나 위 학년 반에 넣어서 독서 수업을 자유자재로 시켰더니 독서력이 상당히 높아져서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생과 함께 독서 수업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부터 본격적인 학교 과목들을 공부시켰더니 놀랍게도 이해력이 높아서 그런지 공부하는 대로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그 결과 중학교 내내 장학금으로 다녔고 결국 큰아이는 중학교 졸업할 때 개교 이래 최고의 내신 점수(200점 만점에 199.33)로 전교1등이라는 기대 이상의 선물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남들은 학원 다니느라 힘든 시간에 우리 집 큰아이가 집에서 뒹굴면서 책만 읽어대자 주변 사람들은 엄마인 나를 흉봤었다. 엄마가 아이 공부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독서만 시키고 있으며 자기가 하는 일에만 신경 쓴다면서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우리 집 큰아이의 독서를 통한 교육적 성과를 보고는 다들 너무나 놀랐다. 난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나도 대학원 입학을 해서 정신 없이 같이 바빴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내내 꾸준한 독서 훈련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힘이 이미 길러져 있었기 때문인지 학습 효과가 높게 나타났고 정신적인 강한 의지와 끈기가 우리 집 큰아이를 전교 1등으로 만들어준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서 지도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해왔던‘독서 능력이 곧 학습 능력’이란 나의 소리 없는 외침은 우리 아이를 통해서 낱낱이 증명이 되었고 난 그 덕분에 한우리의 호황(?)까지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큰아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께서 직접 당신 자녀들을 맡기시며 우리 아이처럼만 책을 읽고 생각하게 해달라고 하셨다. 힘든 특목고 입시 공부와 학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중3때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시다가 아이의 정신적 성숙이 바로 독서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았다. 교내 독후감 최우수상에, 외부 글짓기 대회상도 타고, 반에서는 실장이고, 선도 부원이면서 학교 임원에, 편집장까지 하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리 집 큰아이를 선생님들까지도 무척 부러워하셨다. 그 전에도 학부모들이 누구누구가 한우리에서 공부하더니 너무 달라졌다면서 우리 아이도 그렇게 변하게 해달라고 하실 때도 기분 좋았지만, 내 아이를 가르치셨던 학교 선생님들께서 당신 자녀들을 우리 집 큰아이처럼 해달라고 하실 때 느껴지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자 희열이었다. 그 순간 난 교사로서, 어머니로서 지금껏 내 역할을 잘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고, 오랜 시간 독서 지도에만 매달려 온 내 정열과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너무 행복했다.

어떻게 큰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다가 잘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난 우리 집 큰아이가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 할 때가 되어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을 때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할 에너지가 생겨난다. 그런데 현재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하기도 전에 무엇이든 하도록 강요되고 있기 때문에 미처 에너지가 다 발휘되지 못한 채 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최고라든지 일류라든지 하는 그런 욕심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는 모험을 했는데 그 기간이 초등학교 6년 동안이었다고 말하면 많은 어머님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참을 수 있었느냐면서 날 이상한 듯 쳐다본다. 하지만 난 내 아이를 믿고 내 아이는 분명히 독서로 다져진 실력이어서 언젠가는 추진력을 가지고 스스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아이가 6학년이 되어도 학원도 가기 싫어하고 시험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문제집도 제대로 풀지 않을 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가 한우리 수업만 좋아하고 책만 잘 읽는다는 것만으로 내가 너무 맘 놓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걱정했지만 난 끝까지 우리 아이를 믿어 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중학교 들어가서 ‘독서 능력이 곧 학습 능력’이란 것을 증명해 준 우리 집 큰아이를 생각하면 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대해 언제나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은 유학 때문에 멀리 떠나 내 곁에 없지만 끝없는 도전과 큰 포부도 독서를 통해서 얻은 것이기에 난 독서지도사의 생활을 더욱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작은 아이도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호기심과 탐구력도 대단하다. 오빠처럼 속셈 학원에 다니길 싫어해서 지금껏 보내지 않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시작했던 독서 훈련 덕분에 독서력이 높아서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습 능력도 높다. 사춘기 딸을 갖고 있는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과 대화가 안 되어서 걱정투성인데 나는 나와 대화를 하길 너무나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딸이 있어서 즐겁다. 우리 딸아이는 엄마가 너무 편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랑은 무슨 이야기든지 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편해지고 행복해진다고 한다. 난 그 말처럼 듣기 좋은 말이 없다. 다른 집 아이들은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면 나 스스로 마음의 불안정해서 제대로 된 교육이 나오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행복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다른 집 아이들과 엄마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덜어주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18 희망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 최우수상 90기 온라인 신은정 3,663 내용 보기 내용 닫기
대학과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회사에서 설계엔지니어로 일하였다. 남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전문직으로 일하는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여성으로 독특한 일을 한다며 늘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런 시선이 싫지는 않았다. 내 나름대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참고 또 참으며 일구어낸 열매였으니까. 하지만 나의 회사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업무가 체 파악되기도 전에 나의 몫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별을 보고 출근하여 별을 보고 퇴근하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 인간관계는 또 얼마나 힘들었던가. 나의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대상 또한 찾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 알맹이가 쏙 빠진 껍데기,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소모품으로 전락해 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사태가 그쯤 되자 나는 나를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내가 과연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 였던가. 나는 찾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독서 지도사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알아보던 중 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과정이 가장 역사가 깊고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 2007년 온라인 과정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잦은 출장과 바쁜 업무로 미수료의 결과를 얻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시 도전하고자 마음속에 늘 생각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 사이 2년 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고 그 동안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출산과 동시에 자연스레 휴가를 얻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육아휴직도 얻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몸이 어느 정도 추슬러 질쯤 나는 독서 지도사 과정에 재도전하였다. 정보교류가 쉽고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 오프라인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아이를 보며 공부해야 했기에 다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다. 2007년에 한번 도전해 본 기억으로 학습내용과 과제분량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떠올라 개강 첫날부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해야 했기에 1시간짜리 수업을 4시간에 걸쳐 듣기도 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계속 다음 강의가 듣고 싶어지고 점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각 과정마다 강사님들은 오랜 노하우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고 실감나는 수업을 진행해 주셨다. 감동적 이였던 것은 온라인 수업이라고 해서 강의 내용이 오래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전 차수의 오프라인 강의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 때문에 내용의 신선도가 살아있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또한 온라인 수업의 최대 장점은 자신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나같이 매주 정확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 유용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계속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 학습내용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업 중반정도가 흐를 무렵 ‘강사에게 이메일 보내기’라는 코너가 생성되어 모르는 부분에 대해 바로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과 지역별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주신 것은 온라인 강의의 단점을 최대한 보완해 주신 부분으로 생각한다. 단지 처음 다가가는 것의 어려움을 느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아쉽게 다가온다.

수업을 계속 들으며 지금까지 나의 독서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책의 종류와 의도에 따라서 목표와 전략을 달리 가져가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여 주도적인 독서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그저 읽기 활동 자체로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 부분을 깨닫고 나는 수업 시간에 배운 독서 전, 중, 후 활동을 나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실천해 보았다. 먼저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읽는 목적과 알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하고자 했다. 또한 책날개에 있는 정보부터 작가소개, 머리말, 추천사 등은 꼼꼼히 읽어 배경지식을 활성화 하였다. 그 후 차례를 훑어보며 내용을 먼저 가늠해 보는데 이 부분에서 필요 없는 부분이다 싶으면 과감히 넘어갔다. 책을 읽는 중에는 밑줄긋기와 마음에 드는 부분은 따로 옮겨 적기를 통해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또한 난생처음 독서기록장을 만들어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줄거리, 느낌 등에 대해서 기록해 두었다. 이렇게 명확한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책의 내용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고 책의 내용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또한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의 장르가 정보와 지식을 주로 전달하는 비문학에 매우 치우쳐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동문학사 강의를 들으며 느꼈던 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작품들 중에 내가 읽어본 것이 몇 권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다시 문학작품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많이 피곤하고 지친 나의 영혼을 문학작품들은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다. 정신적인 풍요를 누리자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삶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과정을 듣는 동안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의 유년시절에도 이런 독서지도사 선생님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였다. 그렇다면 나또한 이렇게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겪는 문제를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내어놓기가 어렵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아 학습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독서지도사는 그야 말로 아이들의 인격과 지식을 동시에 끌어올려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문학성이 높고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 하는 좋은 책들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확신을 갖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은 다가오는 미래를 불안이 아닌 자신감과 희망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고도의 전인적 교육을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은 어른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학교 선생님, 더 나아가 우리 사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숙련된 독서지도사는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숙련된 선생님으로써 인격과 지식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준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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